본문 바로가기

Story.

[오넷] 프레이야 To. 가엘




편지,



To. Gael B.


 가끔 생각해 본 적 있는 지 모르겠다. 아이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이 언제든 닥쳐올 수 있음을 알고 있었을테다. 그리고 당신은 아이와 친한 사람들 중 하나였으니, 당연히 어렴풋이나마 인식하고 있었겠지. 나는 아이에게 기울일 관심을 다른 사람에게 주어야만 하기 때문에 아이가 당신에게 얼마나 이야기를 했는지는 몰랐다. 칠 년이라면 가족같은 친구를 만들 수 있는 시간이라고는 하지만, 결국 가족이 얼마나 의미 없는 단어인지, 아이도, 나도, 어쩌면 당신도 안다. 그렇기 때문에 그저 모르는 채로 살아왔다. 굳이 물으려고 들지도 않았다. 가끔 당신이 아이의 이야기를 할 때 내 가족에 대해 투덜거리는 소리를 조금, 조금씩 모아다 윤곽은 잡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당신이 이 편지를 전달 받았다면 분명히 일어났을 이 상황에 대해서, 그저 덤덤하게, 꼭 우리들처럼 받아들였으면 한다. 


 스물 여덟, 보통 한창이라던 나이에 나는 아이 둘을 데리고 이혼했다는 이야기를 당신에게 했었는지는 기억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편지를 받았을 때 당신이 처음 알게 될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때 이후로 나에겐 마녀라는 별명이 붙었다. 사람들 말로는 표정이 없는데다 목소리가 차가와 그렇댄다. 딱히 별명이 신경을 쓰는 사람은 아닌데, 조금 아렸다. 나는 거울을 잘 보지 않기 때문에 내가 웃는지, 우는지, 표정을 통 알지 못한다. 내가 얼마나 나이가 들었는지도 십여년 전에 마지막으로 본 것이 전부다. 언듯 모니터나 핸드폰 액정에 얼굴이 비치면 서둘러 고개를 돌리던 나를 당신이 알아차렸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나는 당신에 대해 모르는게 참 많다. 그래서 당신은 늘 내게 그렇게 사람을 무턱대고 믿어서는 안된다고 말을 하기도 했었다. 물론 처음에는 마녀 상사였을 뿐일테니, 내 기억 상 이것은 아이에게 했던 말을 내가 주워들은 걸수도, 혹은 비교적 최근에 일어났던 일일 수도 있다. 나의 기억은 정확하지 않아, 이 편지를 읽던 당신이 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 하고 얼굴을 찌푸려도 이해한다. 이미 죽음과 손 잡은 사람의 손 끝은 굳어있어서 말을 유려하게 풀어낼줄도 모르니, 가뜩이나 틀린 기억이 더더욱이 왜곡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 어찌되었든, 내 기억 속에서 우리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던 당신의 눈 만큼은 또렷이 존재한다, 지금. 나는 그 사실이 처음엔 즐거웠으나 지금은 참 쓰다. 

  이렇게나 구구절절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내가 스스로 웃었는지, 아닌지 확신을 하지 못함을 당신에게 알리기 위해서다. 표정이 없다는 뜻은 상대에게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수단 하나를 놓쳤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내가 당신과 함께 일했던 7년 간의 시간이 무척이나 즐거웠다는 걸 알리기 위해 길게 말을 적는다. 당신의 사람 함부로 믿지 말라는 말도, 이렇게나 퍼주면 안된다던 제법 당당한 잔소리도, 야근하느라 다크서클을 눈 밑까지 끌고와서는 새벽 여섯시에 내가 함께 출근하니 기겁하던 모습도, 나는 즐거웠다. 


  내 집 안엔 더이상 사랑한다고 말하던 사람이 없고, 함께 웃던 남매들이 없고, 졸졸 쫓아다니던 아이들도 없다. 비록 경영에 소질은 없었으나 회사와 재단을 붙들기를 자처한 이유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그래서 나는 이곳이 소중하다. 아주 잠시, 내가 없으면 더이상 이곳을 운영할 남매가 마땅치 않으니 내가 함부로 목숨을 걸면 안되는걸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아주 고통스러워서 나를 더더욱 가훈 아래 묶어놓았다. 일하는 것이 점점 더 힘들어졌고, 거울은 점점 더 끔찍해졌으며, 말 수도 줄었다고, 어느 누가 화장실 앞에서 걱정스레 나에게 말을 걸었던 일을 기억한다. 나는 그날 웃지도, 울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지만 아주 깊숙한 곳에서부터 우울을 느꼈다. 잘 사그라들지도 않았던 듯 싶다. 

  그래서 처음 아이가 미술관에서 만난 연이라며 당신을 추천했을 때, 누군가를 이렇게나 깊게 가라앉은 사람이 머리 꼭대기에 앉은 회사로 끌어들인다는 사실이 미안하기도 했다. 아니나다를까, 당신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 당신은 제대로 돌아가지 않던, 적자 투성이 회사에 기겁했다. 그러더니 자진해서 야근을 하고, 사 내 분위기 탓에 일찍 퇴근 시키니 이번엔 새벽 여섯시부터 출근을 하고, 억지로 휴가를 쥐여주어 보냈더니 일감을 찾아다 집으로 가져갔다. 세상에. 나는 누군가를 쉬게 만드는 일이 이렇게나 어려울 줄 몰랐다, 내 자신부터 쉴 생각을 않았지만은 그랬다. 처음으로 무언가를 손에 쥐여주려는데 거부하는 사람을 열심히 쉬게 만들려고 머리를 쓰면서, 희미하게 이 회사를 감싸고 있던, 내 눈에만 보이는 안개가 걷혔다고 처음 생각할 수 있었다.


  당신은 내게 참 고마운 사람이다. 나는 당신이 처음 몇 년 버티지 않고 사표를 쓸거라 생각했다. 당신은 참 재능 많고 사람을 기분 좋게 해주는 멋진 사람이었으니까. 운만 뒤따른다면 이보다 훨씬 더 좋은 곳으로 갈 수 있을거라고. 물론 이곳만큼 후한 곳도 없기는 하지만, 결국 당신이 꽤 스트레스를 크게 받고 있다는 사실은 자명했으니까. 사람은 때로 돈보다 더한 가치를 찾아갈 시기가 오기 마련이다. 나는 당신에게 그 시기가 곧 닥칠거라고 생각했다. 설마, 7년이나 옆에 서서 버텨줄 줄은 몰랐다.

  물론 회사의 일 뿐 아니라, 나 개인적으로도 고마워할 일이 참으로 많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말주변이 없다. 특히 내가 이야기를 하며 심정을 풀어낼 수 있게 도와주던 아이가 지금은 곁에 없다. 그저 오롯이 나 혼자만의 필력으로 이 글을 적고 있자니 이 즈음 되면 슬슬 당신이 이 글에 담긴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다. 결국 또다시 두엇 덧붙인 문장의 의의를 설명하자면, 채 표현할 수 없는 나름의 행복을, 당신은 내게 주었다. 늪 깊숙한 곳 아래 잠긴 사람에게 햇빛은 닿지 않는다. 소소한 기쁨도, 즐거움도, 재미도, 웃음도 느끼기 힘들어하는 사람이 한 번 웃을 수 있는 일을 만들어준다는게 얼마나 대단하고 값비싼 일인지, 당신은 알 것이라고 믿는다. 감히 상사 주제에 부하직원에게 친구라고 일컫어도 되는지 수십, 수백번 고민하게 만든 당신을 나는 꽤 좋아한다. 말하고 싶었던 문장은 결국 단 둘이다. 나는 당신을 친구라고 생각한다, 그것도 꽤 친한 친구. 그리고 나는 당신에게 너무나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단지 그 뿐이다. 그런데 이 글은 편지지 소설이 아닌데도 나는 고작 내 느낌 하나 설명하겠다고 이렇게 많은 글자들을 빌려야만 했다. 나는 이렇게나 글을 못 쓰는 사람이다, 유감스럽게도.


  이 편지의 첫 문단에 나는 당신이 우리들처럼 나의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였으면 한다고 말했다. 슬 써온 글을 다시 읽어보는데, 내가 참 이기적이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아 입 안이 쓰다. 그렇다고 이제사 했던 말을 취소할 수도 없고, 결국 약간의 수정을 거치기로 결심했다. 나는 당신이 나를 아주 조금은 원하는 만큼 슬퍼해줬으면 한다. 그래야 지금 당장 휩싸인 안개가 어떻게든 눈물에 씻겨내려가 좋았던 일들만 기억할 수 있겠지. 여기까지 쓰는데, 갑자기 당신이 정작 내 죽음에 아무 느낌도 없는데 나 혼자 주저리주저리 걱정을 늘어놓고 있는거면 어떡하지, 하는 기우가 스친다. 만일 이 먹구름이 어쩔수 없이 내 시야를 가려 만든 착각이 이 편지의 정체성이라면, 크게 신경쓰지 않고 버려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만일 내 걱정이 기우임이 사실이라면, 나는 당신에게 당당하게, 이 편지지와 잉크는 방수라고 알려주고자 한다.

  나의 최후가 정확히 어디서, 어떤 형식으로 닥쳐올지 나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짐승들이 저 죽을 때를 알고 절벽으로 향하듯, 나도 어렴풋이 다가오는 죽음의 기척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이제 아홉번째 관에 묻히게 될테고, 더이상 당신을 보지 못할테다. 그래서 지금 미리 많이 말해두고, 내 글자 하나하나에 내 진심이 오롯이 담겼는지 더 많이 봐두려고 한다. 


 정말로 많이 고마웠다. 그리고 지금도, 정말로 많이 고맙다.

 나는 당신이 진심으로 행복하기를 바란다. 당신이 나와 같은 늪에 잠기지 않기를, 설령 잠겼더라도 밧줄을 붙잡고 힘차게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내 아이에게도 쓰지 않을 편지를 감히 당신에게 남긴다.

 지금은, 바깥에 장미가 한가득이 피고 선선한 바람이 25도만큼 데워져 회사 창문을 통해 내 손등을 스치는 6월의 여름. 내가 마지막으로 볼 계절.


 고맙습니다, 가엘.

 정말로 많이 고맙습니다.

 행복해줘요,

 고맙습니다.

 


From. Your Friend, Freyia.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B] 100. Through All the Pain And the Sorrows.  (0) 2018.09.24
[B] 000. 문  (0) 2018.09.23
[디에스이레] 001. Light Letter  (0) 2018.05.03
[아이나노스] 001. Here.  (0) 2018.03.15
[덴젤] 010. Eden.  (0) 2018.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