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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디에스이레] 001. Light Letter




 편지로 잡은 인연만큼 쉽게 스러질만한 것이 없다. 그렇다고하야 그가 글의 힘을 믿지 않느냐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수많은 서신들이 사람을 죽이고 살렸으며 명과 명 사이를 이어 놓거나 끊어놓기도 한다. 그가 짧은 글을 선호하는 까닭은 결국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다. 글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결국 그 양피지는 상대의 손에 넘어가 연을 상하게 할 확률이 마냥 커진다. 특히 관계를 이어나가고자 붙잡을, 몇 안되는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잠시 손아귀에 쥐여진 편지를 내려다본다. 하얀 양피지와 검은 잉크로 이루어진 간결한 열 글자.


 그는 꽤 많은 편지를 써왔다. 그건 가끔은 개인적이긴 했으나 대부분은 일이었다. 집행부를 나오고나선 더욱 그랬다. 재미없는 날들, 다시금 가주를 죽이고 그 자리를 꿰차 어깨에 부득이하게 짊어진 짐은 생각보다도 너무나, 지루했다. 그래서 새로이 찾은 생각을 위해 회의에서 승리했고, 법안은 개정되어가나 그 뿐이었다. 점차로 깨달아가는 스스로의 의문은 이제 더이상 그에게 일정 이상의 열정을 끌어내지 못했다. 혁명가의 횃불이 꺼지고, 사상가의 생각은 다시금 길을 나설 준비를 한다. 그 과정은 실로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다시금 갈아엎을 땅을 찾아나서는 일. 그는 그 사이 틈에 반드시 찾아오는 권태를 견딜 수는 있었으나 기꺼워하지는 못했다. 

 사람에 즐거움을 맡기는 일이 드물었다. 생각보다도 더욱 쉽게 변질되니 사람에 관심을 가지고 불을 붙이면, 그 횃불은 십자가에 닿기도 전에 꺼져버리곤 했다. 그나마 예외는 있었으나 그 성질이 변덕스럽고 즉흥적이어 깊어지기는 어려웠다. 애초에 본인부터가 그랬으니. 그래서 그는 이번이 제법 특별하다, 고 여긴다. 굳이 끊지 않아도 된다 여겨 잠시 뿐이었던 연을 저가 손에 감아 붙들고 있는 것이.


 그는 손에 편지를 쥐었다. 바로 일련의 일정을 취소하는 글을 적어 부엉이에 매달아 보내고, 망토를 걸친다. 편지에 가벼운 키스를 보냈다. 꼭 성호를 긋는 것과 같은 제스처였다. 목적지는 당연하게도 정해져있었다. 문을 두드리면, 과연 그의 구원이 보일련지.

 괜히, 기분이 들떴다.





BGM : Sereno - 나선의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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