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는 복잡하고도 단순했다.
그의 베아트리체.
나의 페드로.
나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그를 잡아넣고.
그는 가장 최고조의 순간에 나를 가공하여.
서로 증오 속에 뒤섞이고
닮고
싸우고
착각하고
도발하고
유혹하고
뼈 속에 새겨
결국은 서로가 아니면 안 되어서.
서로에게 질릴 그 때는 기어코 서로가 죽음을 맞이할 때라는
그 당연한 사실이 문득
어이없을 정도로 우스웠던 적이 있었다.
나의 세계는 지루함으로 점철되어 흑백 그 자체였다.
지루해서
약으로도, 술로도, 책으로도, 잠으로도
벗어날 수 없을 만큼 깊이 흑백에 침식당했던 나는.
당신을 마주하면 저릿한 가슴과 함께
불보다 거세게 타오르는 증오와
오싹하게 등골을 달리는 쾌감과
그리고
어쩌면
“마약중독자가 마약에게 느끼는 건 사랑이죠, 듀아넬….”
내가 색을 가지는 순간은 당신이 나를 당신의 예술품이라 부르는 순간이었다.
“미안하지만 나의 미스 뮤리아는 뒤쳐진 네 놈이 아니라서 말야.”
“어린 아이의 불평 따윈 아무래도 상관 없어.”
내가, 무슨 말을 했더라.
당신이 나를 죽이려고 든다는 사실은 당연한 것이었다.
당신이 나를 원한다는 사실은 당연한 것이었다.
당신이 나를 증오한다는 사실은 당연한 것이었다.
당신이 나를 닮았다는 사실은,
당신이
나를 미스 뮤리아라고 부르는 사실은,
당신이,
당신은.
내가 없으면
미쳐버린다는 사실은.
아아
나의 자만이라고 생각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네 놈은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어.”
기억을 잃은 당신이라도 그 말만큼은 용서하지 못해.
입을 틀어막아 버릴까 생각하다
그만 두었다.
의미 없이 숨을 가져오려 했던 키스는 분노로 제대로 느껴지지도 않았고
의미 없이 당신의 화난 표정을 보고 싶어 했던 말들은 산산조각난지 오래였다.
당신의 화난 얼굴을 보고 싶어서,
나는 웃었다.
나와 당신은
서로 증오 속에 뒤섞이고
닮고
싸우고
착각하고
도발하고
유혹하고
뼈 속에 새겨
결국은 서로가 아니면 안 되어서.
나의 페드로.
그의 베아트리체.
내 웃는 얼굴을 보고 증오심을 느끼는 당신은 사랑스럽다.
혐오스러운 마약에게 사랑을 느낀 나는
절대로 이 증오를 사랑으로 착각하지 않으리라 당신에게 장담했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
그 앞에서 나를 무너뜨려달라 애원할 수도 있었고
그래서 당신이 나로부터 ‘질렸다’는 감정을 갖게 만들어
그렇게 내 생명을 끊어버릴 수도 있었다.
스물 일곱.
당신이 나에게 도달하기까지 스물 일곱.
내가 당신에게 닿을 때까지 스물 일곱.
승자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이 게임은 사실
이미
아주 오래전에.
당신이 내게 처음 미스 뮤리아라 부르고
당신이 나를 처음 물들였을 때 부터.
이제는 당신을 볼 때마다 선뜩한 가슴을 견딜 수가 없다.
공포다.
나는 당신 없이는 지루함에 파묻혀 사라져 버릴텐데.
당신은 나에게 질려버려 훌륭하게 나 없이도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당신은 나 없이는 미쳐버려야하는데.
나는 당신 없이는 미쳐버리는데.
당신은 나 없이는 살수 없어야하는데.
나는 당신 없이는 존재할 수가 없는데.
확신이 불안으로 바뀌고,
장담이 두려움으로 치환되어.
단 한순간도 의심하지 않았던 사실에 감정이 파고들어 흔들어 놓았을 때.
결국은.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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