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시우♥김제진 100日
Pink Cloud
도통 마음에 차는 것이 없었다.
화면 가득 띄워놓은 크롬 창들을 훑고 클릭하고 스크롤을 내리고 다시 클릭했다가 새창을 띄우기를 약 세시간 째. 정말로 마음에 드는 것이라곤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금속 조각일 뿐인 판판한 철덩어리와, 분명 광이 남에도 녹이 슬어보이는 칙칙한 체인들 뿐. 낮게 한숨소리가 울렸다.
사실 제진은 지극히 객관적인 입장에서 평하자면, 예술적인 면에 대해서는 또래 10대는 물론이오 무섭기로 소문난 노총각 음악교수 저리가랄 정도로 매우 까다로웠다. 이는 그의 전공인 음악 계열을 떠나 디자인, 색채 등 미술적인 감각을 죄 포괄하여 재단하는 기준이다. 옷과 같은 편의성이 최우선인 종류에는 그리 세심하게 굴지 않지만, 만일 정말 그 모양새가 구매 사유의 팔십퍼센트 즈음을 차지하는 '디자인 위주' 상품이라면 말이 다라진다. 제 스스로가 지쳐나가 떨어질 때까지 발품을 팔 듯 검색창에서 보드없이 허우적댄다. 끊임없이 찾아 둘러보고, 따져보고, 상품 후기 하나하나 클릭해 다각도에서 촬영한 사진까지 몽땅 끌어모은 후에야. 또 무엇이 이상하다, 무엇이 어긋났다며 달칵, 창을 끄고 새 검색어를 입력한다. 몇번째인지 모를 한숨이었다. 그러나 스스로의 강박증과, 윤시우에게 줄 기념일 선물이라는 막대한 타이틀이 겹쳐 도저히 포기할 수는 없었다. '대충' 이라는 단어가 애초부터 사전 속에서 지워진 그는, 다소 뻑뻑한 눈을 한두번 문지르곤 다시 화면을 돌아보았다.
수십개의 온갖 종류가 들어찬 목걸이들이 넓은 액정화면을 가득 매우고 있었다.
목걸이라.
기념일 선물은 뭐가 좋을까, 라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자마자, 머릿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단어였다. 제진은 윤시우의 새하얀 머리카락을 정말 좋아했다. 그가 자주 입는 까만 코트는 물론이오, 깨끗한 피부에도, 옅은 회색 눈에도 환상적으로 꼭 맞는 그만의 무채색. 더군다나 그것은 어깨를 타고 넘어올 정도로 길어서, 간혹 그가 뒤로 맨 머리칼을 풀어헤칠 때면 매끄럽게 목선을 덮어내리곤 했다. 가끔 헝클어뜨리면 부스스 흩어지는 것이 실로 부들부들 귀여울 따름이다. 이 커리카락이, 제진이 부득이 반지가 아닌 목걸이를 그에게 선물하고자 결심하게 만들었다. 하얗고 까만 그 무채색 한가운데가, ㅡ물론 조금 아쉬울지라도ㅡ 뻗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반지보다는 지금 상황에, 그에게 더 잘 어울린다 생각했다. 물론 연인들의 상징이라는 커플링이 끌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얼마전 자퇴 절차를 밟은 제진과 다르게 윤시우는 당연히 아직 학생 신분이었다. 한번 끼고 다니기 시작하면 숨기기 어려운 반지보다는 목걸이가 현직 남고생에게는 더 부담이 없으리라.
다만 확실히 문제는 마음에 들거나 딱 떠오르는 디자인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나같이 너무화려하거나 너무 수수했고, 대개 매우 흔한 것이었다. 특별한 사람이자 애인에게 특별한 것을 해주고픈 것은 실로 당연한 마음이다. 그래서 그는 그날 연습조차도 거들떠도 보지 않고,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매달려 있었다. 찾을 때까지의 싸움이었다.
덩그렁, 덩그렁.
거실에 걸려있는 낡은 괘종시계가 열두번 묵직하게 울렸고, 장장 열 네시간에 걸친 제진의 전투는 헛수고로 돌아갔다.
지금은 일백일의 약 삼십일 전. 배송 시간 배송 비용따위 각오하고 해외 사이트들까지 죄 뒤졌건만 나오는 것이라고는 '특별한 추억! 애니메이션 주인공들을 모티브로 한 디자인들을 만나보세요.' '별자리 디자인. 탄생석과 함께 주문 즉시 컷팅 해드립니다.' '사고력을 높여주는 퍼즐 목걸이!' 와 같은, 아무래도 내키지 않거나 너무 흔히 보이던 것들 뿐이었다.
그래, 보통 사람들이라면, 그리고 보통 연인들이라면. 목걸이에 자신들의 이니셜 정도를 새기는 것 만으로 만족하곤 하지 않는가. 다만 제진은 무언가 성에 차지 않아 도통 마우스를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조금 더 일반적으로 가도 분명 나쁘지는 않으련만, 이렇게 타협하기엔 그는 생각보다 고집이 쎘다.
뭐가 있을까, 뭐가 있을까. 그나마 가장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종류는 회중시계 모양의 미니 오르골 목걸이 였으나ㅡ제진은 어쨌든 음악과 연관 시킨 디자인을 좋아했다ㅡ 단지 그 뿐으로, 디자인에도 재생되는 곡에도, 아무런 감흥을 갖지 못했다.
차라리 그 스스로가 작곡한 곡을 넣든가 할 수 있었다면 훨씬 나았으리라.
...
...차라리?
"아."
순간 스쳐지나간 그 생각은 계속된 온라인 상 중노동에 충혈된 눈을, 그가 억지로 크게 뜨도록 만들었다. 윤시우는, 다시 한번 강조하는 사항이지만 누구보다도 특별한 그의 밝고 장난스러운 동갑내기 애인은. 제진의 노래를 꽤나 좋아해주었다. 그 '노래'는 정확히는 그의 목소리를 칭하지만, 지난번 자작곡에 대해 윤시우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었음을, 그는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물론 곡은 새로 만들어야할테다. 오르골 음정이나 재생시간에 맞추어야할테니까. 그렇게 맞춤 제작할 곳도 구해야할테고, 목소리를 넣을 수 있는 종류가 아니니 어쩌면 윤시우는 실망할지도 모른다. 제진의 곡 자체 보다는 그냥 그의 목소리에 호응해 준 것일지도 모르니까. 더군다나 제진은 노래는 몰라도 작곡 자체에 큰 재능이 없었다. 몇 년 계속 공부해오기는 했지만, 그의 곡에 대한 평가는 '너무 많은 것들을 억누르고 있다.' 는 종류의 악평에서 벗어나지 못하곤 했으니까.
마우스를 내려놓고, 곰곰히 생각에 빠져들었다. 책상 의자를 등으로 밀어 쭈욱 젖히니 소리없이 의자 바퀴가 굴렀다. 윤시우의 실망할 가능성을 감수하고 아예 주문 제작을 할 것인가, 아니라면 눈을 조금만 더 희생시키는 한이 있어도 더 찾아볼 것인가. 단순하지만 어려운 갈등이었다. 전자가 나쁜 아이디어는 아닌 듯 했지만, 거기다가 꽤나 만족스럽게 '특별한' 선물이 될 수는 있겠다만.
"너무 내 기준에 가까운 발상 아니려나......"
고민스러운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도로록, 의자 바퀴가 다시 굴렀다. 컴퓨터 화면이 화면 보호기 모드로 전환되었다. 퐁, 퐁, 액정에 색색의 비눗방울이 솟았다. 한참 이리저리 시선을 천장에서 헤매이던 제진이 의자에서 몸을 일으킨 것은 보호기를 띄우는데에도 지친 컴퓨터가 자동절전 모드로 들어서고도 한참이 지난 후였다. 제진은 컴퓨터에는 더이상 눈길도 주지 않고 곧장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짧은 통화 연결음. 핸드폰 너머로 익숙한 여성의 목소리가 넘어왔다.
"여보세요? 아들?"
"네, 어머니. 한밤중에 죄송하지만, 저, 지난번에 주셨던 명함 목록집 말인데요. 그거, 한번만 더 보여주실 수 없을까요?"
너만을 위한 작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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