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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듀아넬] 002. Sound





  기분이 더러웠다. 나쁘다, 불편했다로 표현할 수 없는 감각이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눈이 보이지 않는 손에 눌리는 고통을 호소했다. 애써 눈꺼풀을 내리감았음에도 끝도 없이 밝은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차가운 바닥에 닿은 손가락이 얼음 속에 묻힌 듯 차가웠다. 아무렇지도 않았던 장미꽃 향기가 지나치게 짙어 속이 울렁거렸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아야하는 방 안에 날카로운 날붙이가 철컥거리는 문을 긁어내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것도 먹지 않아 올라온 위액이 순식간에 참기 힘들 정도로 쓰게 느껴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방 한구석에 반쯤 엎드려 전부 게워내고 있었다.


 어지러웠다. 불을 전부 꺼둔 방안의 빛이 너무 밝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방 한가운데 아무렇게나 널부러졌다. 쿵쿵,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렸다.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평소에 재보았던 제 맥박보다 확연히 떨어진 리듬감이 느리게 귀에서 울렸다. 허리 아래에 감각이라곤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고 목 위는 간지러운데다 뜨거웠다. 어쩐지 발바닥에 피가 질척이는 느낌이었다. 방 한가득이 피어있는 장미꽃잎이 짓밟혀 나온 즙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제가 짓밟혀 나온 핏방울인지. 내심 후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발끝과 다리가 끈적였다. 그러나 아프지 않았다.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가만히 사지를 늘어뜨렸다. 

 

 자꾸만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모르핀에 코카인, 헤로인? 무얼 섞고 무얼 빼 먹었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스스로 먹었던가. 누군가가 먹였던가. 호흡이 점차 잦아들고 예민해진 감각이 반응하기만 할 뿐 움직이지 않았다. 굳은 머리로 천천히 생각했다. 다운 계열 마약인가. 여전히 눈이 부시도록 밝은 흰색 빛을 어떻게든 가려보려 손을 끌어당겼다. 그러나 손은 차갑게 굳어 바닥에 그대로 놓여있을 뿐 말을 듣지 않았다. 너무 밝은 백색 시야가 아렸다. 귀에 자꾸만 배어드는 날붙이 소리가 느린 심장 속으로 파고들었다. 머릿속을 되짚어나가려는 노력은 부질없었다. 심장 소리만큼이나 톱니바퀴는 느려졌다. 아주 조금만 더 나아가면 그대로 움직이기를 멈출 것만 같았다. 더이상 생각하기가 힘들었다.

  

아주 먼 어디선가 발소리가 들렸다.



 이것이 행복감인가? 스스로에게 자문하듯 던진 물음은 답을 얻지 못했다. 그 직후 뇌는 사고를 멈추었다. 그대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푸욱 잠겼다. 어둠 속인가 바닷속인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정작 손가락 끝이 더듬은 것은 얼음장같은 바닥이었다. 간신히 잦아든 빛에 문득 눈을 떴을 때 바로 코 앞에 잡히지 않는 날카로운 날붙이의 끝이 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것은 천천히 허공을 긁어내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끼이익, 끼이이익. 분필이 칠판을 긁는 소리가 생각날 듯 하다 이내 가라앉아버렸다. 손잡이를 잡은 보이지 않는 손은 창백했다. 너무나도 창백하고 시퍼래서 이 세상의 것이 아닌가 여겼을 터였다. 멍하니 쳐다보았다. 장미 꽃잎이 바르작, 창문도 없는 방에 분 바람에 날리는 소리가 들렸다. 자꾸만 허공을 파고들던 날붙이가 눈을 내리찍은 것은 그때였다. 


달칵.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피가 나는지 안 나는지도 구분이 불가능했다. 다시 시리게 번지는 시야에 결국 눈을 또 감아버렸다. 난도질 당한 눈꺼풀이 멀쩡하게 움직이는 것이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멍한 머릿속에 무겁게 돌 하나가 기억을 눌렀다. 순간 아찔하다 싶은 것이 누른 돌에 가시가 박혀 있어 머리 깊숙이 느낌을 새겼다. 제 피를 선명하게 묻힌 잘 벼려진 칼날이 천천히 다시 시야에 들어왔다. 그 끝은 선명히 저를 향해 있었다. 손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나이프를 쥔 손은 여전히 핏줄이 전부 드러난 채 시허앴다. 발끝과 다리에 질척이는 핏자욱은 여전했다. 등에 짓뭉개진 장미꽃잎이 매서운 향기를 내뿜었다. 입 안이 시큼했다.


문 소리도 발 소리도 여전했다.




  생전 처음으로, 울고 싶을 정도로 무섭다고 생각했다.




  끼익, 문 열리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려퍼졌다.












Alicemare OST - Playing With Dol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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