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ely.

[니플헤이머] IF (W. 모스)

Kreisel 2016. 2. 14. 23:14


* '모스가 니피의 제안에 따라 DSC를 나가, 결국 적으로 마주쳤다면' 의 IF 로그입니다.








  어디부터 삐뚤어져 만들어진 환상이지?

  한차례 총성이 가셨다. 화약 냄새로 그득히 들어찬 머릿속이 동시다발적으로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필터조차 걸러내지 못한 밀도 높은 내음이 폐부를 마구 찔러댔다. 구역질나는 시체들 피냄새가 섞이고, 와그작, 부츠에 뼛조각 밟히는 소리가 울리고. 지금 당장 거꾸로 위액을 게워내도 모자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한걸음을 떼었다가, 다시 또 한걸음을 떼었다. 목적지는 잃었으나 향한 그 끝에는 어찌되었든 네가 있었다. 이 무너질 것만 같은 아슬아슬한 절벽 끝을 내리 짓밟으며 걸었다. 한때는 살아있었을 네 새로운 동료들의 시체를, 다가서는 길에 일부러 발 끝으로 눌렀다
  1분 20초 전 내가 머리를 쏴 맞춰 죽인 놈의 손목을 한 번. 우득. 이미 있으나마나한 손목뼈가 우그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2분 4초 전 내가 목을 쏴 맞춰 죽인 놈의 머리를 한 번. 콰득. 두개골이 부츠 아래서 뭉개지는 소리가 퍼졌다. 5분 7초 전 내가 심장을 쏴 맞춰 죽인 놈의 가슴을 한 번. 으드득. 이제 공기따위 들어차지도 못하는 가슴이 우그러뜨려지는 소리가 선명했다. 모든 소리를 귀에 어거지로 우겨담으려고 노력했다. 내가 죽인 것들, 내가 망가뜨린 것들의 소리. 시체들 사이에서 온전히 서있는 것은 오로지 너 뿐이도록, 마치 필요없는 것들을 정리하듯 하나하나 어그러뜨렸던 것들의 비명을. 끝도 없이 귀를 찢는 이명의 틈새로 피비린내 나는 소음을 찔러넣으려 애썼다. 네가 정말로 지금 내 앞에, 적으로써 서있음을 어떻게든 받아들이기 위해. 

 난도질 당한 다리를 절뚝였다. 목을 아슬하게 스쳐지나간 상처가 쓰렸다. 몇번이고 구멍 뚫린 어깨가 삐걱였고, 뼈가 드러나기 직전의 허리가, 등이, 울컥 피를 토해내며 움직이지 말라고 비명을 질렀다. 내 걸레짝 마냥 찢겨나간 몸에 비해, 너는 꽤나 온전히 서있었다. 동료들의 피만 함뿍 뒤집어 쓰고, 생채기 몇 외에는 다친 곳 없이. 그것이 분하다는 표정으로, 네가 그 자리에 서있었다. 웃음이 났다. 전투의 시작, 적의 틈바구니 속의 너를 알아채자마자부터 내가 그렇게나 만들고자 했던 상황에 더럽게도 웃음이 났다. 피가 튀겨 미끌거리는 손에 쥐인 권총이 바즈락 거렸다. 너는 내 손에 눈길 조차 주지 않았다. 두렵도록 날이 선 눈동자는 똑바로 나를 향해 있었다. 나는 언젠가 네게 말한적이 있다. 내가 볼 수 있는 상대가 나는 제대로 볼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방독면을 쓰는거다, 라고. 그리고 너는 내게 악취미라 일갈했더랬다. 
  사실, 실제로 이것은 지극히 악질적이었다. 나는 내 웃고 있는 내 입술도, 초점이 맞지 않는 내 눈도 전부 가렸다. 그러나 너는 일그러진 입매도, 무섭게 나를 향한 눈동자도, 전부 드러내고 있었다. 이 상황은 처음부터 일방적이었다. 나는 네 의사따위 무시하고 한때 살아있던 네 새 동료들을 무참히 짓밟았다. 이 전장에서는 오로지 너와 나 뿐이어야한다. 절벽 끝에 서 있을 사람은 단 둘만으로도 충분해. 너는 나에게 외쳤다. 나를 무시하는 건가? 나를 위한다면 내게 진심을 보여봐.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쇳덩어리를 쥐었던 너는 나에게 진심을 요구했으나 나는 그 말을 듣지 않고 그저 가슴에 박았다. 나는 방독면에 막히고 소음에 집어삼켜져 들리지 않는 웃음 소리를 뱉어냈었다. 적에게 진심을 바라는 네가 안타까웠고, 그 말을 흘려넘기지 못하는 내가 비참했다. 이 전장에서 나는 자조외에 내던질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분명히 눈이 마주쳤지만, 나는 그 사실을 알았고 너는 알지 못했으리라. 
  
 질질 발을 끌어 맞댄 얼굴은 온통 어그러져 있었으나 무감각했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한낱 피투성이 고철 덩어리와 같이 입을 다물었다. 무거운 쇠로만 이루어진 움직이는 기계마냥 몸을 떨지도, 갈라진 목소리를 뱉지도, 표정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5년전으로 돌아간 나는, 몇달 후의 너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나. 숨소리 하나 흐뜨러뜨리지 못하는 나를 보면서, 너는 무슨 생각을 했나. 내 손에 쥐인 권총에 드디어 네 시선이 떨어졌다. 곧장 멍들고 부푼 내 손목을 붙잡아 올린 네가, 그 딱딱한 총구를 네 머리에 가져다댄다. 너는 몰랐겠지만, 나는 알 수 있는 시선을 그렇게나 시리도록 마주치면서. 
  쏴. 어느 입술에서 비집고 나온 고작 한 단어가 사람을 그렇게까지 나락으로 밀어뜨릴 수 있는 지, 나는 처음 알았다. 바다는 말라버려 마른 땅을 드러냈다. 짜디짠 소금기가 드디어, 드디어 목을 조르며 수분을 빼앗기 시작했다. 까끌한 혀가 말려들어갔다. 소리없는 실소가 터져나왔다.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찰칵. 총알 하나 남지 않은 빈 총구가 울리는 소리가 퍼졌다. 네 얼굴이 일그러졌다.

 내 표정. 잘 보여? 그래, 기분이 어때?

  구겨진 얼굴은 분명 울음을 담고 있었다. 갈라진 목소리는 분명 비웃음을 담고 있었다. 머릿속이 그 둘을 동시에 소화시켜 내기 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머리 끝까지 붉어지는 느낌이었다. 어때, 어떠냐고? 무언가가 속을 긁어내기 시작했다. 손톱 끝으로, 안에서부터 나를 찢어내고 어떻게든 바깥으로 그 머리를 들이미려고. 마치 가스가 차오르는 방에 갇힌 어린애마냥, 심장에서부터 가슴 바깥을 헤집고 살아남기 위해 그 무언가는 미친듯이 손톱을 세웠다. 

  돌아버릴 것 같았다. 사지가 찢겨나가도 이보다 더 아프진 않았을테다. 차라리 갈비뼈를 부수고 그 속의 폐덩어리를 꺼내 어떻게든 뭉개고 싶었다. 내 호흡이 한순간 찢겨나갈 수 있게, 이 이상 그 빌어먹을 네 눈을 마주치지 않게. 놀라울 정도로 차분한 내부를 전부 긁어내 주먹 안에 쥐고 반죽덩어리 따위로 만들고 싶었다. 손가락 끝부터 갈려나가는 이 느낌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었다. 온 몸이 떨렸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아주 조그만 떨림조차 죄다 묻은 내 스스로가 끔찍하게도 혐오스러워 죽어버리고만 싶었다. 목을 매고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고. 손목을 긋고 눈에 대못을 박고 전기 드릴로 머리에 구멍을 내면서. 그러면, 그러고나면 최소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될테니까. 

  이번에도 내 선택의 문제였다. 늘 나의 선택은 최악의 결과를 불러오고, 그에게, 네게 검고 선명한 악몽을, 내게 더럽도록 질척한 비참함을 안겨주었다. 그때 내가 네게 나가라 제안하지만 않았더라면. 지난날에 붙잡혀 엉망진창으로 무너진 결론을 입밖으로 내지만 않았더라면. 그랬더라면, 이랬더라면, 그리고 또 그랬더라면. 익숙한 후회가 온 몸을 집어 삼켰다. 5년간 끝도 없이 잘근잘근 씹었던 미련과 후회 덩어리가 우득 목구멍을 틀어막았다. 울 수 있을 것 같은데, 산 채로 타들어가는 몸에 물이란 물은 죄 사라져버린지 오래였다. 그 모든 몇 달, 몇 년, 평생의 감정을 한 순간에 삼켰다. 네 질문 하나 때문에. 지금, 나의 기분을 묻는 너의 빈정거림 하나 때문에. 다시, 웃어버릴 것만 같았다.


  딱딱한 돌바닥에 발이 파묻히는 기분이었다. 짙고 짙은 침묵까지도 숨을 틀어막았다. 억지로 처박은 정적은 내 발을, 발목을, 어깨를, 마침내 머리를 바닥 아래로, 아래로 처박았다. 드디어 내가 움직일 수 조차 없게 되었을때, 너는 등을 돌렸다. 다신 만나지 않기로 약속해, 우리. 그것은 약속이 아닌 선언이자 선포였다. 한 순간 '우리'라는 단어로 묶인 너와 내가 놀라울 정도로 아팠다. 눈이 멀어버릴 거라고 생각했다. 커다란 못에 박히고 꿰뚫린 내 눈은, 다시는 보이지 않게 되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못이 네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길어지고, 길어져, 마침내 귀를, 뇌를 한번에 엮어내고 나면, 나는 홀로 어둠 속에 떨어지리라고. 그러나 그것은 희망일 뿐이었나보다. 내 눈은 여전히 선명하게 멀어져가는 너를 시야에 넣고 있었다. 작아지는 네 등에 초점이 잡혔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옆에 있는 동료로써의 너를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내 눈을. 그 순간 만큼은 전부 손가락을 우겨넣어 뽑아버리고 싶었다.

  부러져 길게 늘어난 내 손가락이 다음 순간 네 팔을 붙잡고 있었다. 아주 잠시,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너는 이내 그 위에 손을 얹었다 밀쳐내듯 떨구었다. 이미 저희들끼리 제멋대로 맞부딪히는 뼈마디가 욱씬거렸다. 툭, 손이 내동댕이쳐졌다.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지마, 친구. 짤막한 마지막 마디와 동시에, 너는 틈조차 주지 않고 사라졌다. 마지막까지 내 표정은 보지 못한 채 가버렸다. 끝까지 단어 하나로 나를 절벽 밑으로, 바닷물조차 없는 텅 비고 갈라진 절벽의 밑으로, 밑으로, 떨어뜨리면서.


  네게 겨누어졌던 텅 빈 권총을 아무렇게나 내던졌다. 무너진 손아귀에 꽉 차 무거운 것을 쥐었다. 망가져 한계까지 달았던 조각난 방독면이, 마침내 반쯤 덜크럭, 바닥으로 떨어졌다. 끝도 없이 쏟아지던 눈물이 드디어 바깥으로 미친듯이 밀려나왔다. 바다로 향할 길조차 가늠하지 못해 유감스럽게도 갈라진 땅에 먹혀 사라질 주제에. 반짝이는 총구를 드러난 눈에 대었다. 구역질 날 정도로 더러운 짠 물을 견딜 수가 없었다. 바다는 이미 한순간 사라져버렸는데, 고작 물줄기 몇을 앞세워 자꾸만 헤매이는 눈이 너무나도 싫었다. 앞을 보지 못할 시간이었다. 소리를 듣지 못할 시간이었다. 더이상, 너를 후회하지 않을 시간이었다.


 나는 드디어 웃을 수 있었다.



  

나를 믿어?

나는 여기에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