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ely.

[멜레아그로스] Midnight 1.

Kreisel 2018. 6. 25. 00:29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외로운 적이 없었는가?

  그는 이 질문을 수도 없이 받아왔다. 남의 이야기 하는 것이 무어 그리 재미있던지. 죽음을 먹는 자였던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즈카반에서 생을 마감했을 때, 두엇 남아있던 일가 친척들이 끔찍한 벽난로 사고로 목숨을 잃었을 때, 집요정 한 둘 뿐인 대저택에서 홀로 고루하게 책이나 파고 있을 때, 모래 시계의 영향으로 7년을 반복되는 호그와트에 갇혀있었을 때. 모두가 그에게 물었다. 단 한 번도 외로운 적이 없었나요?

 그의 답은 정해져있었다. 물론. 당연히. 그럼요. 한 번도. 그는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곤 단 둘 뿐인 사람만 같았다. 재미있거나, 혹은 지루하거나. 그의 삶은 단면 뿐이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심정 따위 그와는 거리가 멀었다. 모두가 얇은 양 면 종이에 글과 그림을 한가득 그려 헷갈려만 할 때, 그는 태연히 텅 빈 여백을 뒤로 넘겼다. 한 면만을 쓰면 그만인데, 어째서 그리 복잡하게들 사는 지. 다만 그만큼 읽을 것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의 삶은 권태와 나태로 물들어있었다. 잔머리만큼은 훌륭히 돌아가던 어린 시절의 그가 고작 지나가던 할아범의 상술에 걸려 덥썩 모래시계를 손에 넣게 만든 것도 그 끝도 없던 지루함이었다. 


 외로움, 고독, 슬픔, 분노라, 그다지 연이 없는 단어들이다. 텅 빈, 아파트 한 층 만한 방에서 혼자 주저 앉아 종이를 찢어 비행기를 날릴 때에도, 수영장에 하루 종일 들어앉아 기절할 때까지 물 속에서 숨을 참을 때에도. 그는 단 한순간도 외롭다고 느껴보지 못했다. 아즈카반에서 죽은 사악한 부모, 벽난로에서 숨을 거둔 얼굴도 기억 안나는 친척, 말도 걸지 않고 일만 하는 집요정, 기계와 환상일 뿐인 호그와트의 사람들. 그는 그들에게 분명히 호감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뿐이었다. 무언가 잘못 되었다는 걸 잘 느끼지 못했다. 자신의 호불호를 가끔 재미있어 보이는 사람들에게 끼얹었다. 그리고 실컷 함께하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즐겁게 그들의 일상에 끼어들다 그들이 갈 때 즈음 되면 미련 없이 놓아주었다. 인간 관계에 잘 질리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기준이 낮은 것도 아니었다. 단지 보내줄 따름이다. 그들이 가겠다는 데, 굳이 자신의 종이를 아쉬움, 미련, 후회, 집착 따위로 더럽히기엔 그 소모의 과정이 너무나도 길 것임을, 그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 과정을 견디기엔 세상엔 다른 즐거운 일들이 이렇게나 많을터인데. 감정의 갈무리만큼 그에게 쉬운 일은 없었다. 그는 모든 것을 쉽게 놓아주었다. 결국 그리하야 또 지루하겠다, 새로운 것을 찾아야지, 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 그가 있던 곳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언제나 재미있는 일. 그가 찾아다니던 모든 것이 그랬다. 언제나, 끝도 없이 재밌을 순 없을까. 비대한 희망임을 알기에 굳이 기대를 걸진 않았으나, 가끔, 아주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는 자신에게 빈자리가 없음을 알았다. 어떻게 여기에 7년이나 있으면서 미치지 않을 수 있었던거야? 그는 현실로 돌아와서 그 말을 몇 번 곱씹어보곤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자신에게는 공백이, 결여가, 욕심이 없음을 이유로 꼽았다. 간절해본 적이 없다. 그게 문제였다. 그나마 가지고 있는 거대한 희망이라곤 현실성 없을 따름이고, 모래시계 안에 갇혀있을 때에 결국 몇 번이고 죽어본 것도 지루함 때문이지 미쳐버릴 고독 탓이 아니었다. 나가는 것이 간절하지도 않았다. 귀찮으니 기대는 하지 않고, 그저 딸려간다면 최소한 재미는 있겠지. 그렇게 몇 년 보내는 일은 그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시간들과 그다지 다를 것 없었다. 지나친 권태는 결국 기면증을 불렀고, 조각조각 기억의 공백을 가져왔으나 그것이 우울이나 고독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축복인지 저주인지 굳이 구분짓지 않는다. 물론 축복이 즐겁고 저주가 지루하다면 그는 기꺼이 축복을 택했을 터이나.

 그때도 어떻게든 늘어지는 시간을 때우고자 휴게실에 잠들어있었을 뿐이었다. 얼굴에 책을 덮고, 팔을 늘어뜨리고, 손등으로 느껴지는 가짜 온기를 만끽하면서. 7년이라는 시간에 드디어 질려버렸을 때부터, 언제나 그래왔듯이.


 그리고, 그 아이가 그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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