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AU] [에스(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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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에스 / S
페어 이름 : 르네비 디아즈 / Renebee Diaz
나이 : 25세
성별 : 남자
코마여부 : 논코마 noncoma
외관 :
사람의 호감을 사기 쉬운 순한 인상. 다만 날카롭게 깎인 선에 마른 체형과 더불어 길다란 눈매 탓에 자칫 표정을 구기기라도 했다가는 분위기가 급변한다. 평소에는 얼핏, 혹은 우울한 기색으로 눈매와 입꼬리를 휘고 있어 마냥 순해 보인다. 마냥 마르기만 한 것은 아니고 비교적 잔근육 정도는 가지고 있다. 전체적인 체격 역시 확실하다. 키 187cm. 체력은 약하다. 비율이 좋다. 뼈대가 도드라진 모양새. 손목과 목, 어깨와 옆구리 중심으로 자잘하게 찢기고 베인 흉터가 많다.
반면에 피부색은 거의 좀비마냥 창백하다. 알비노가 의심될 정도로 머리카락도, 피부도 하얗고 질려있다. 이리저리 잔뜩 삐친 머리카락 역시 창백한 흰 빛이다. 곳곳에 회색 새치가 섞여있다. 숱이 많고 길이마저 제각각인 머리카락은 목을 살짝 덮는 정도로 내려온다. 오른쪽 앞머리카락은 얼굴 반을 죄다 덮어버릴 정도로 길게 길렀다. 그 아래에는 거의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진 화상 자국이 짙게 남았다. 오른쪽 턱 아래까지 아슬아슬 떨어지는 그 흉터는 머리카락으로 어떻게든 가리고 다니는 모양새. 당연히도 오른쪽 눈은 완벽한 실명 상태로 화상에 의해 눈꺼풀이 녹아 뜨이지 않는다. 전체적인 색감은 회색.
왼쪽만 드러난 눈 색이 다소 독특하다. 부상으로 인한 홍채 이상 탓에 기존의 맑은 하늘색 눈에 자색이 섞였다. 후천적 부분 오드아이. 눈매가 짙고 길다. 눈 아래 왼쪽 뺨에 검은색 별 하나와 작은 원 모양 세 개짜리 문신이 있다.
청회색 와이셔츠를 팔뚝까지 걷고, 살짝 달라붙는 진한 회색 바지에 검은색 구두 착용이라는 지극히 간단하고 편한 차림위에 길고 거추장스러운 로브 형태의 외투를 걸쳤다. 대개 로브를 눈을 가릴 정도로 푹 뒤집어쓰고 돌아다닌다. 가만히 서있거나 앉아있을 때만 벗곤 한다.
성격 :
“자격조차 없는 내가 널 기억하잖아.”
밝고 활발하다. 그러나 아무리 웃어도 우울한 기색이 쉽게 가시지는 않는다.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보이는 구석구석마다 다정하고 착한 사실상 호구. 이것저것 챙겨주는 걸 좋아한다. 요령이나 융통성이 좋아 상담역도 잘한다. 사람의 감정에 쉽게 공감하고 이해하고 파악해 달래는 데에도 재능이 있다. 민감하고 눈치가 빠르다. 붙임성이 좋고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다가선다. 상대의 입장을 무조건 먼저 배려하며, 말하는 것 보다는 들어주는 것을 잘한다. 장난기가 제법 있다. 장난도 곧잘 치고, 농담도 하며, 사람을 웃게 만들어주고 싶어 한다. 성공 확률도 꽤 높다.
은근히 성질도 잘 내고 울컥하는 기질도 다소간 있긴 하지만 대개는 그런 척이고, 진심으로 화를 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조용조용하고 친절하다. 정말로 화를 낸 것이 평생에 걸쳐 한 손으로 꼽을 정도. 늘 먼저 사과하고 먼저 굽히고 들어간다. 넓은 인간관계 형성에 뛰어나다. 다만 스스로 친구라고 부르는 이는 별로 안 된다. 감히 자신이 친구라 칭할 수 있을 만큼 자기 자신의 애정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기를 힘들어한다.
완벽한 외강내유다. 심지어 현재는 겉면조차 많이 약해져있는 상태다. 사람에게 정을 굉장히 많이 쏟는 타입. 쉽게 믿고 쉽게 배신당하며, 그럼에도 상대의 입장에서부터 생각하려고 드는 실로 착해빠져서 바보 같은 성격. 늘 자괴감에 빠져있다. 자기애가 없고 군데군데 자기비하가 심하게 드러나는 구석이 있다. 자존감도 낮고 자존심도 없으며 잘 드러내진 않지만 자신감도 바닥을 친다. 자조적이다. 트라우마와 다소간의 PTSD에 시달리고 있다.
소중한 사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거기에 매달리고 과보호 하는 경향이 있다. 그저 닿은 인연에 약하다. 사람에 약하다.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라도 제가 누명을 뒤집어 쓸 지 언정 고발하지 못한다. 이 탓에 선과 악의 개념은 제법 분명함에도 악을 덮어주다 본인이 죄책감에 휩싸이고, 그래서 더더욱 인연에 매달리는 악순환의 반복이 잦다.
의외로 본인의 감정이나 생각을 숨기는데 능숙하다. 억지로 웃어도 억지인 티가 안 나게 웃을 줄 안다. 두려워도 두렵지 않은 척 할 줄 안다. 본능적인 감정이나 즉각적인 반응도 억누를 줄 안다. 너무 착해서 오히려 솔직하지 못하다.
기타사항 :
- 에스(S)는 언젠가부터 대고 있는 자신의 가명. 진명은 루이스 워즈워스 Luis Wordsworth. 모두에게 에스라고 말하기 때문에 본명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 누군가에게 진명을 추궁당하거든 곤란한 기색으로 웃을 뿐 별 말이 없다.
:: [차마 본인의 원래 이름을 사건 이후의 르네비에게 말할 만큼 스스로는 뻔뻔하지 못하다며 자조하듯 웃었다. 이후 ‘루이스’는 모든 사람에게 ‘에스’라고만 자신의 이름을 말하기 시작했다. 얼굴에 입은 심각한 화상에 더하여, 루이스를 알던 이들은 대부분 죽었으므로 문제는 없었다. 기억 상실 이전에는 서로가 서로의 본명을 알고 있던 사이였으며, 때문에 에스 역시 르네비에게 ‘루이스’라고 불렸었다. 서로 5년 가까이 주고받았던 어린 시절의 메일들에도, 함께, 혹은 혼자 찍은 사진에 손수 르네비가 적어준 둘의 이름에도, 루이스 워즈워스라는 이름이 뚜렷하게 적혀있다. 에스는 메일과 사진들을 전부 인터넷의 한구석과 창고 안에 정리하여 잠가두었다. 한 달 내내, 그리고 그 이후에도, 에스는 단 한 번도 메일과 사진들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사실 못했던 것에 가깝지만.]
- 외동아들에 부모님이 모두 생존해 계셨었으나, 현재는 두 분 모두 사망.
:: [엘리멘탈 (Elemental) 이라는 사이비 종교에 완전히 빠져버린 광신도를 부모로 뒀다. 에스의 부모님은 에스가 태어나기 전 부터 이미 종교에 빠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범죄를 저질렀고, 이는 두 사람의 인성을 완전히 망쳐놓았다. 교정 내지 훈육을 빙자한 가정 폭력 속에서 수도 없이 상해를 입었던 에스는 자연스레 허약체질로 클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피를 많이 흘려도 이단자의 손은 부정한 것이라며 에스의 치료조차 거부하는 부모님에 의해 제대로 된 치료 한번 받지 못하고 자랐다. 부모님이 대부분의 시간을 엘리멘탈 소유의 폐공장에서 보낸 까닭에 에스는 언제나 혼자 텅 빈 창문 없는 집안에서 지냈다. 기억조차 흐릿한 어린 시절 부터였다. 그나마도 종교에 전부 돈을 갖다 바친 부모님 때문에 매우 작은 단칸방에서, 어머니의 동생인 ‘아저씨’가 가끔 들러 채워주는 생활 용품으로 혼자 요리하고 청소하는 법을 익히면서.]
:: [아저씨는 도우미이자 감시 체제였다. 에스는 8살에서 9살, 집 밖으로 단 한발자국 나가기도 힘들었다. 학교마저 잦은 폭력의 결과 탓에 자주 빠져야만 했다. 그나마 등하굣길도 아저씨가 데려다주었고, 데리러 왔다. 그 잠깐 사이에는 르네비에게 손 한번 흔들 시간만이 아주 조금 났을 뿐이었다. 아저씨에게서 몰래 빌린 노트북은 그 지루하고 힘들었던 1년간, 핸드폰조차 가지지 못했던 에스가 르네비와 연락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아저씨의 사후, 새 아저씨에게 들키지 않고 노트북을 빼내어 끝까지 르네비와 연락 할 수 있었던 것은 에스가 가장 귀중히 여기는 행운이었다. 9세 이후에 만난 새 아저씨는 알코올 중독이었고 술독에 빠져 자주 자신의 일을 망각했다. 그때마다 에스는 밖으로 달려 나가 디아즈가 소유의 미술관으로 향했다.]
:: [사이비 종교 엘리멘탈은 교묘했고, 경찰에 손에 신도들을 잃으면서도 이름을 바꿔가며 끝까지 살아남았다. 이들은 구약 때의 동물을 잡아서 제사를 지내던 것을 원천으로, 사람을 산제물로 잡아 바치는 것이 중요한 종교적 의식이라 믿었다. 당연하게도 그들은 이를 충족하기 위해 몇 년 주기로 신도들의 ‘제물’을 요구했다. 에스의 부모님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언젠가는 에스의 학우, 언젠가는 에스의 아저씨. 에스의 학우는 끝내 미종결 실종 사건으로 남았고, 에스의 아저씨는 끝내 가출사건으로만 남았다. 에스가 이 같은 범죄 현황을 알게 된 것은 19살, 막 성인이 된 직후였다. 부모님은 에스를 신자로 만들기 위해 폐공장으로 데려갔다. 눈앞에서 사람 한명이 마치 한때의 돼지나 소와 같이 산제물이 되는 것을 보는 경험은 실로 잊을 수가 없는 충격이었다. 에스는 거부했다. 제 양 팔을 붙들고 회유하는 이들에게 혐오 어린 거절의 말을 내뱉었다. 도망치고 싶었으나 불가능했다. 그들은 부모님이라는 이름으로 에스의 반항을 ‘철없는 아들의 사춘기’라 정의 내렸고, 그를 교정하기 위해 체벌을 사용했다. 사지의 뼈가 남아나기 힘들 정도로 맞고 견디기 힘들 정도로 굶고 온갖 종류의 폭력과. 그러기를 1년, 그럼에도 에스가 끝까지 그 부모님의 사이비 종교를 거부하자, 마침내 부모님은 에스를 포기한 듯 했다. 신고 못할 것을 알고 자유롭게 놓아준 듯 했다. 그렇게 보였었다.]
:: [에스는 상상을 초월하는 범죄자가 자신의 부모님이라는 이유만으로 신고조차 하지 못했다. 그는 언제나 일방적으로 쏟아 붓는 정에 매달렸다. 그는 자신과 어떻게든 인연이 닿은 이들을 미워하기 힘들어했다. 혈연이라면 더욱 그러했다. 자기 자신이 범죄로 얼룩지고, 죄책감에 썩어나가 뻥 뚫리면서도 그는 끝내 입을 다물었다. 무엇이든 이야기하던 르네비에게조차. 하루하루 뼈저리게 후회하다, 결국은 와르르 무너져버릴 때까지.]
- 직업은 번역가. 어렸을 적 접할 수 있었던 책들이 대부분 원어였던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집에 있던 먼지 쌓인 사전을 일일이 뒤져가며 읽었었다. 이를 계기로 자연스럽게 외국어 실력을 갖췄다. 전문적으로 학원을 다니거나 하지는 못했다. 가능한 언어는 독일어, 프랑스어이나 번역 작업은 프랑스어만 한다. 아직 신인 번역가인지라 그리 일이 많이 들어오지는 않지만, 장르와 작가의 문체에 따라 분위기를 다르게 표현하는 데에 소질이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 [20세에 르네비에게 관련 편집장을 소개받았다. 르네비가 없었더라면 직업을 갖기가 불가능 했을 것.]
- 출신지는 영국의 리버풀. 시외의 집세가 싼 곳을 골라다니다보니 전기기계 공장 옆의 공기가 탁하고 소음이 굉장한 빈민가의 집에서 자랐다. 리버풀에서 떠나본 적이 거의 없다. 덤으로 언젠가 노트북으로 리버풀을 검색해보았다가 듣게 된 비틀즈는 에스가 제일 좋아하는 가수.
:: [항구 도시에서 자랐으나 제대로 바다를 본적은 손에 꼽을 정도로, 성인이 된 후에야 르네비가 바다를 스케치하기 위해 해안가로 향했을 때 따라가 처음으로 바다를 보았다.]
-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으나 현재는 카메라를 아예 놓아버렸다.
:: [가장 처음 찍은 사진은 14세, 르네비와 레이크 디스트릭트(호수 지방)에 놀러가 르네비와 찍었던 사진. 가장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은 폐공장에서의 사건 며칠 전 르네비를 찍었던 사진이다. 카메라는 이후 어느 건물 쓰레기통에 SD카드를 부숴버린 채로 버렸다. 사진들은 선술한대로 전부 창고 깊숙한 서랍 안에 넣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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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신이 생각하는 페어와의 관계 :
관계, 전에는 그 누구보다 소중하나 두려운 친구, 후에는 고용자와 고용인. 피해자와 가해자.
본인에게는 어릴 적 정신적인 지지대가 되어주었던 한살 차이 형이자, 아무리 맞아 죽어갈 지경이 되어도 함께 미술관을 구경하며 이야기할 생각으로 어떻게든 아득바득 살 이유를 주었던 구원자, 친구. ‘당신은 여전히 착한 아이입니다.’ 라고, 말 안 듣는 불효자 취급에만 익숙해져있던 어린 에스에게 처음으로 그렇게 텍스트를 건네준 사람. 그래서 그에게만큼은 착한 사람으로 남아야하는 자신. 학우에게조차도 제대로 ‘친구’라는 단어를 입에 담기 힘들어했던 에스가 유일하게 당당히 나는 그를 친구라 생각하노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었던 사람.
그러나 그 역시 자신과 같이 생각해줄까, 하는 의문과 두려움은 도통 떨쳐낼 수가 없었다.
에스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이 관계는 매우 일방적이다.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는 듯 인간관계에서 어색하고, 잔혹하고, 언제나 대화를 섞을 때마다 미묘한 위화감과 본능적인 공포심을 안겨주는 상대. 사이코패스. 아무리 소중하고 사랑하는 르네비라 하여도 그를 인외적 존재로밖에 보이지 않게 만드는 감정적 결여. 그런 상대가 자신에게 느끼는 감정이 본인과 같을 리 없다. 언제든지 쓰고 버릴 수 있는 패로써, 거슬리면 언제든지 아무런 죄책감 없이 죽이고, 해칠 수 있는 그런 카드로써. 단지 사무적으로, 그저 오래된 상대기에 자신을 ‘친구’라 불러주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으나 그렇게 생각하면 할수록 신경 쓰이는 것은 견딜 수가 없었다. 자신에게 그는 특별하고 소중한 사람이나, 그에게 특별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신조차 아니다.
끝까지 본인만이 친구라 생각하는 일방적인 관계라고, 에스는 늘 그렇게 생각했다.
호수 사건 이후로 에스가 생각하는 르네비와의 관계에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엮여 들어갔다.
물속에 빠져버린 그가 마치 물감마냥 색이 풀리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고양이를 죽이던 모습과 겹쳐 보여 순간 구하기를 망설였던 자신은 가해자다. 그 약간의 지체 탓인지, 이후 명확한 이유 없이 청력을 잃어버린 르네비는 피해자다. 새롭게 새겨진 이 관계는 에스에게 죄책감과 자괴감 그 자체였다. 아무렇지도 않게 피를 뒤집어쓰고 그 누구의 감정도 이해하지 못하는 르네비에 대한 공포심은 그대로였지만, 에스의 자책은 그보다 훨씬 강했다. 머뭇거림을 티내지 않고 무엇이든지 그를 위했다. 청력을 잃은 르네비의 곁에서 일을 돕고, 청력의 빈자리를 느끼지 않도록 도와주며. 사죄이자 양심의 가책을 떨구기 위한 최선이었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그를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자신을 직시할 때마다 에스의 죄책감은 배가될 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 가식이라 칭해질지도 모르는 본인의 태도가 끔찍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를 떠날 수는 없었다. 에스에게 르네비의 의미가 너무나도 컸기 때문에 떠나기엔 에스는 너무 겁이 많았다. 애정과 죄책감과 공포심이 뒤섞인 감정은 생각보다 괴로웠다. 그럼에도 떠날 수는 없었다. 피해자와 가해자.
쌓이고 쌓였던 죄책감은 마침내 크게 터져나갔다. 르네비의 오른팔을 잘라놓은 것은 자신이었고, 기억을 잃게 만든 것도 자신이었다. 멍청하고 한심하고 끔찍한 루이스 워즈워스가 그렇게 르네비를 피해자로 만든 것이다. 그 사실 자체로 에스는 무너졌다. 와르르. 그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간 자신을 볼 르네비의 시선이 두려웠다. 르네비의 혐오를 견딜 자신이 없었다. 모든 것을 알았을 때 그가 자신을 용서해줄 확률이 얼마나 될까? 당연히도, 제로였다. 그는 에스를 경멸할 것이다. 어쩌면 드디어 버릴 때가 된 이를 분노 앞에 매정히 죽여버릴지도 모르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그와의 관계는, 루이스가 아닌 에스가 둘러대었듯 ‘디아즈가의 고용자’과 ‘디아즈가에 고용된 간병인’ 정도가 다였다. 몇 십 년을 쌓아왔던 관계가 한순간에 무너졌고, 자신에게 남은 그와의 관계란 ‘피해자와 가해자’, 그에게 남은 자신과의 관계란 ‘고용자와 고용인’. 사실상 아무것도 남지 않은 셈이었다.
혼자 모든 것을 기억해 거짓말을 한 용서받지 못해야할 가해자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 채 가해자 하나만을 옆에 두고 삶을 잃어버린 피해자. 그 어느 때보다도 일방적이고, 짙고, 끔찍한 관계였다.
2. 자신이 페어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장소와 물건 :
- 미술관 -
첫 만남의 장소이자 르네비를 반드시 만날 수 있었던 장소. 르네비가 있는 곳, 자신이 가야할 곳. 리버풀의 시내, 하얗게 위치했던 건물. 양 옆에는 조그만 화단이 있고, 그 화단에 고양이가 묻혀있는 곳. 부잣집인 디아즈가의 소유였던지라 상당히 큰데다 걸려있던 그림도 많았던 미술관.
거의 르네비의 개인전이었다. 15살 이후 미술관에 전시되기 시작한 르네비의 그림들을, 에스는 전부 좋아했다.
에스가 제일 좋아하는 르네비의 그림은 ‘황혼’과 ‘집’. 제일 보기 힘들어하는 르네비의 그림은 ‘안내판’. 스스로 요절했다고 말하지 말라고, 어느 날 그렇게 말했던 듯도 싶다. ‘포기’ 역시 보기 힘들어한다. 티는 내지 않지만 르네비가 처음 죽였던 검은 고양이를 모델로 해서 그렸던 그림인 ‘카피캣Copy Cat’ 역시 에스가 피하는 그림 중 하나.
- 병원 -
14세 때 한번, 25세 때 한번. 르네비를 살리기 위해 간 곳이자 최후에 르네비를 잃은 곳. 돌이킬 수 없는 거짓말을 한 곳. 일방통행의 장소. 정작 스스로는 치료 받을 환경이 되지 못하여 많이 가지 못했던 장소. 르네비가 입원해 있을 때마다 거의 지박령 수준으로 붙어있었던 장소. 그리고 이제는 평생 무서워 가지 못하게 될 곳.
들렀던 병원은 대부분 큰 병원이었다. 대개 1인실에 입원한 르네비를 간호하느라 늘 옆의 침대에서 졸기 일수. 링거 줄과 링거 병은 트라우마.
- 바다 -
가장 처음 보러간 바다는 르네비가 데려다 준 리버풀의 어느 항구였다. 르네비가 그렸던 그림으로만 접했었던 파란 색과 소금 냄새. 바닷바람과 함께 밀려오던 파도의 앞에서 다시 연필과 캔버스를 꺼내들었던 르네비를 찍은 사진은 아직도 창고 서랍에 잠들어있다. 바람에 마구 날리던 르네비의 머리카락을 보고 푸스스 웃었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그때의 바다 내음은 분명히 이후에 혼자 맡았던 것과 달랐노라고, 에스는 씁쓸하게 중얼거렸던 적이 있었다.
- 물 -
고여 있는 거대한 호수, 혹은 지붕 위로 요란하게 떨어져 내리는 비. 르네비의 몸에서 온갖 색이 물에 녹아 풀려나가는 것만 같았던 그때에 시퍼렇고 시꺼멓게 핏물을 삼키던 호수와, 르네비와의 첫만남에서 내렸던 비, 르네비를 만나지 못했을 때 창문 없는 집에서 소리로만 들었던 비, 르네비에게서 불길을 잡아주길 간절히 바라 그 날 폭포같이 쏟아지던 소방 호스가 만들어낸 비. 바다와는 다른 밍밍한 민물과 시큼한 산성비와 차가운 수돗물.
물방울 위로 물감을 풀어 캔버스 위로 붓질하던 르네비는 늘 물과 함께 겹쳤다.
- 사진 -
에스가 찍었던 사진들. 르네비와 르네비와 르네비가 가득한 사진들. 미술관 밖에서, 바다에서, 호수에서, 거리에서, 어느 음식점에서. 15세와 26세 사이의 르네비의 모습이 가득 담겨있는 인화 된 사진들. 자신의 모습은 찾기 어렵지만, 사진기를 잡고 있는 자신의 모습조차 한가득 보이는 르네비의 사진들. 비록 르네비가 웃거나 사진기를 보고 있는 사진은 찾을 수 없거나, 찾기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곡차곡 모아갈 때마다 그저 뿌듯했던 사진들. 그리고 이제는 창고 서랍 속에 먼지가 쌓여가며 잠들어 있는 사진들이.
- 붓과 물감 -
르네비가 그림 그리는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보고만 있었던 적이 있었다. 대부분 시선은 그림에 고정될 수 밖에 없었고, 그와 동시에 한 시야에 들어온 것은 르네비의 손이었다. 붓을 잡고, 물감을 짜고, 물감을 뒤섞고, 붓을 캔버스에 내리 누르는 일련의 손동작이었다. 반복해서 시야에 들어온 붓과 물감을, 에스는 당연하게도 르네비의 상징이라 생각했다.
르네비에게선 언제나 물감 냄새가 났고, 어쩔 땐 잘 빤 빳빳한 새 붓 냄새도 났다. 그 둘이야 말로 르네비를 이루는 톱니바퀴일 것이라고, 어느 날은 그렇게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 고양이 -
르네비가 물감을 개기 위해 팔레트 나이프를 들 때마다 생각나는 것은 검은 고양이였다. 새까만 암흑 같은 캔버스의 색을 볼 때마다 생각나는 것은 검은 고양이 였다. 대화 도중 문득문득 오싹하도록 소름이 끼칠 때마다 생각나는 것은 피투성이로 널브러져있던 검은 고양이와, 그런 고양이를 빤히 바라보던ㅡ
3. 페어와의 큰 사건 :
(과거 시점상 에스를 루이스라 지칭.)
- 첫만남 -
(르네비 8세 루이스 7세)
비가 주륵주륵 내리던 날 밤, 집에서 몇 대 맞고 쫓겨난 루이스가 정처없이 헤매다 발을 붙인 곳은 시간이 늦어 폐장한 리버폴 시내의 디아즈가 소유의 미술관이었다. 늦은 밤에 본인 집안의 미술관을 둘러보던 르네비와의 만남. 몇 마디를 주고받은 이후, 루이스에게 르네비는 손전등으로 일일이 그림들을 비춰가며 구경 시켜 주었다. 그렇게 헤어진 새벽녘 다음 날 부터, 루이스는 밤이 깊으면 몰래 도망쳐 르네비를 찾아가기를 반복했다. 그림 구경과, 잡담과, 교류. 늦은 새벽까지 깨어있어야 했기에 학교에서 늘 잘수 밖에 없었고 늘 혼이 났지만, 루이스는 그래도 좋았다. 그것이 약 3달동안의 일.
:: 루이스가 가장 좋아했던 그림은 르네비가 아주 어릴 때 그렸던 바다 그림. 제목은 기억이 흐릿하였지만, 그 새파란 색을 바라보며 ‘파란색은 소금냄새와 나무냄새가 뒤섞인 색’ 일 것이라며 웃었었다.
- 고양이 살해 -
(르네비 8세 루이스 7세)
만남이 지속 된지 두 달 남짓, 루이스는 진흙탕에 빠져있던 길고양이 하나를 구해 르네비에게 데리고 왔다. 온통 새까만 검은 남자 아기 고양이였다. 르네비도 루이스도 키울만한 여건이 (르네비는 별장의 사용인들 탓에, 루이스는 집안 사정 탓에.) 마땅하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미술관 내부에 둘 수도 없었기에 내린 결론은 미술관 옆 조그만 화단에 먹이를 주고 키우자는 것이었다. 아직 어린 아기 고양이였기 때문에 그리 먼 곳으로 나가지 않았고, 먹이를 주기 시작하자 미술관 주변에 얼쩡거리며 머물기 시작했다. 간혹 미술관 안을 드나들어 쫓겨나기도 했었던 듯 싶다.
그러기를 약 2주간, 여느때처럼 미술관을 찾은 루이스의 눈앞엔 팔레트 나이프에 찔려죽은 검은 고양이와, 피투성이 르네비가 서있었다. 제목도 그림도 기억나지 않는 캔버스가 찢긴 어느 커다란 액자 앞이었다.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이유를 물으니 캔버스를 찢었길래 죽였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무렇지도 않아하는 르네비의 손을 잡고, 루이스는 르네비를 끌고 나와 고양이를 미술관 화단에 묻어주었다.
:: 루이스는 울었으나, 르네비였기 때문에, 라는 이유만으로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아직 어린 나이라 더더욱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는지 느끼지 못한 까닭도 있었다. 어린 루이스가 생각하기에 ‘고양이가 잘못했기 때문에 죽인 것’ 이었고, 이는 슬퍼할 일이었으나 르네비가 행했기에 옳은 일이라 믿었다. 비록 두 달 남짓 되었을 뿐이었지만, 그는 루이스의 생애 첫 친구였으니까.
- 메일 -
(르네비 8세 루이스 7세~르네비 9세 루이스 8세)
만남이 약 세달 째 되던 날, 루이스의 밤나들이는 부모님에게 들키고 말았다. 이른 새벽, 폐공장에서 돌아오는 부모님과 미술관에서 돌아오던 루이스가 마주쳤고, 루이스는 도망치지 못하고 그대로 체벌을 고스란히 감수해야했다. 그리고 그대로 르네비에게 아무런 연락조차 하지 못한 채 집안에 갇혔다. 감시는 심해졌고, 연락할 방도는 없었다. 밖에서는 빗소리가 들렸다.
체벌로 인한 부상이 어느 정도 나은 즈음 뒤, 아저씨의 감시 하에 루이스는 학교에 다시 등교했다. 그러고 지내기를 르네비와 헤어진지 한 달, 루이스의 학교를 배경으로 풍경화를 그리던 르네비와 재회하였다. 그때까지만해도 조금 느슨했던 아저씨의 감시덕에 사나흘간은 이야기를 짤막하게 주고받을 수 있었으나, 이를 금세 알아차린 루이스의 부모님의 의해 아저씨의 감시는 심해졌고, 그마저도 막혀버렸다.
다행히도, 그 전에 메일 주소를 주고받는데 성공했다.
그렇게 다시 연락이 끊긴지 얼마 후 부터, 루이스가 아저씨에게 몰래 노트북을 빌려 르네비에게 첫 메일을 보냄으로써, 서로 간 메일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루이스의 감시자인 아저씨가 죽은 1년 반 후까지는 간혹 등하굣길에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지나치는 정도로 만족하면서.
:: 메일 주소 르네비 : renebeediaz@gmail.com, 루이스 : hopespades077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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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이불이 마구 움직이는 꿈을 꿨어. 형은 무슨 꿈을 꿔?
- 나는 꿈을 잘 꾸지 않습니다.
- 꿈을 꾸지 않는다는 건 어떤 기분이야?
- 꿈을 꾸지 않을 땐 죽은 것처럼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합니다. 눈을 뜨면 새로 태어나는 것 같습니다.
- 그러면 죽으면 잠자는것과 같은 걸까? 잠에 들어서 영원히 깨지못한다면 죽은걸까?
있잖아 만일 형이 그렇게 된다면 나는 형을 깨우러갈게! 형이 죽는 건 싫으니까!
- 르네비 9세, 루이스 8세. 주고 받은 메일 中.
- 두번째 고양이 살해 -
(르네비 14세 루이스 13세)
르네비 10세, 루이스 9세에 루이스의 아저씨가 들어오면서 새 아저씨가 들어왔다. 새 아저씨의 알코올 중독 덕분에 루이스는 자주 디아즈가의 미술관으로 도망칠 수 있었고, 약 1~2주에 한번 꼴로 르네비를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몇 년간 꾸준한 만남 중, 루이스는 르네비가 고양이를 죽이는 것을 다시 한 번 목격했다. 이번에는 모르는 고양이었으나, 이번에도 검은색 고양이였다. 이번에도 팔레트 나이프였다. 이번에도 캔버스를 찢었다는 이유였다. 이번에도, 아무렇지도 않아하는 르네비의 손을 잡아끌고 고양이를 화단에 묻어주었다.
:: 몇 년간의 만남 도중도중 느꼈던 위화감이 순식간에 공포로 변했다. 어느 정도 생각이 자리 잡힌 나이에 재목격한 광경은 어린 시절과 오버랩 되어 충격을 두 배로 키웠다. 르네비가 인외적 존재로 보이기 시작했다. 사이코패스라는 말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금방이라도 르네비의 손에 들린 팔레트 나이프가 사람들을, 자신을 향할 것만 같았다. 이번에는 루이스는 울지 않았다. 다만 혹시라도 자신의 두려움이 떨림으로 전해질까, 르네비의 손을 힘주어 꽈악 잡아끌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웃어주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눈 앞에 있는 피투성이의 상대가, 르네비라는 이유만으로.
- 레이크 디스트릭트 사건 -
(르네비 15세 루이스 14)
루이스에게는 무척이나 드물게도, 부모님과 새 아저씨 모두가 폐공장을 떠나 단체로 어디론가 가버리는 ‘여행일’이 찾아왔다. 르네비와 단번에 약속을 잡았다. 리버풀에서 몇 시간 기차를 타고 가면 나오는 호수 지방, 레이크 디스트릭트로 가기로 했다. 맑은 여름날이었다.
그리고 사고가 일어났다. 르네비가 발을 헛디뎌 한두 번 구르곤 그대로 호수에 빠져버렸다. 망설이지 않고 뛰어 들어가야 했었으나, 루이스는 머뭇거렸다. 사이코패스. 그는 과연 ‘구해야할 사람’인가? 물 속으로 점차 사라져가는 르네비는 마치 핏빛 물감이 온통 풀려나가는 듯 한 착각을 일게 했다. 고양이를 죽이고 피투성이로 서있던 르네비와, 그 순간 등줄기로 뻗쳤던 오싹함이 시야를 덮어씌웠다. 괴물. 그는 과연 구해야할 ‘사람’인가?
아찔한 현기증 직후 다시금 ‘친구 르네비’라는 생각이 생각을 간신히 몰아냈고, 무서운 의문에서 벗어난 루이스는 물에 뛰어들어 르네비를 구해내는데 성공했다. 주변 이들을 불러 911에 곧장 연락했고, 르네비를 병원에 데리고 갔다.
약간 물을 먹은 것 외엔 아무 이상 없었어야했다.
그러나 원인 불명의 이유라는 진단과 함께, 르네비는 청력을 잃었다.
:: 루이스의 왼쪽 뺨에 있는 문신은 레이크 디스트릭트 사건 때 물에 뛰어들 적에 바위에 긁힌 흉터를 가리고자 사건 직후 새긴 것이다. 학교에 보낼 때 들키지 않으려 몸 위주로만 체벌을 가한 부모님 덕에 얼굴에 흉터가 남을 상처를 입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막연히 가려야한다는 생각의 결과물이었다.
:: 새 아저씨는 이 사건 직후 사망했다. 더이상 고용할 만한 감시자가 없었던 부모님의 사정 탓에, 그리고 루이스가 너무 커버린 탓에. 감금 및 감시가 해제 되었다. 르네비와 꾸준히 연락하고 지낼 수 있게 되었다.
- 루이스 실종 -
(르네비 20세 루이스 19세)
루이스는 성인이 되던 날, 폐공장으로 끌려가 부모님의 범죄 현황을 알았다. 거부, 그리고 체벌이 이어졌다. 약 1년간 르네비와 연락할 방도는 없었다. 1년 후 마침내 부모님의 기권을 받아낸 루이스는 단번에 노트북으로 달려갔다. 자신의 이메일 아이디로 로그인 한 순간, 며칠 간격으로 꾸준히 쌓여갔던 메일들이 단숨에 쏟아졌다. 발신인은 르네비 디아즈, 수신인은 루이스 워즈워스. 루이스는 그날 한참을 노트북을 앞에 둔 채 울었고, 메일을 읽느라 밤을 새야만 했다. 다음날, 손으로 쓴 답장을 들고 다시 미술관으로 찾아가기 전까지 한숨도 자지 않고서.
:: 답장의 내용은 간단했다. ‘고마워.’
:: 그럼에도 여전히 루이스의 입장에서 둘 사이가 르네비를 향한 일방적인 친구 관계 였던 것은, 단순히 르네비가 심심할 때 찾는 부속품으로써 자신을 여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마저도 달갑게 받아들인 까닭은 익숙함과 일방적인 애정의 혼합물이었다. 너무나도 익숙해 언급하기조차 지쳐버린 공포와, 너무나도 소중하여 이젠 그가 없이는 존재하기 힘든 자기 자신의.
- 폐공장 사건 -
(르네비 26세 에스 25세)
루이스의 부모님이 몇 달 전부터 자꾸만 르네비, 네 친구를 보고 싶다며 온화하게 굴었다. 한 두번 루이스는 믿지 않았고, 거절했다. 그의 부모님은 범죄자였다. 사람을 인신 공양하는 악마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는 몇 달 동안 계속 되었고, 부모님은 변한 것 처럼 보였다. 루이스는 상상을 초월하는 범죄자가 자신의 부모님이라는 이유만으로 뿌리치지도 못했다. 그는 언제나 일방적으로 쏟아 붓는 정에 매달렸다. 그는 자신과 어떻게든 인연이 닿은 이들을 미워하기 힘들어했다. 혈연이라면 더욱 그러했다. 어쩌면 루이스가 그 약간의 변화를 믿고 싶어 했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속아 넘어간 루이스에 의해 르네비는 에스의 집으로 초대받았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르네비는 폐공장으로 납치당했다. 그러나 루이스는 몰랐다. 몇 시간 뒤 억지로 맞아가며, 혹은 부모님의 애걸하는 소리에 못 이겨 폐공장에 끌려가, 재단에 묶여있는 르네비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르네비의 머리에 말라붙어있는 피딱지와 자잘한 흉터들, 그리고 재단, 시퍼런 칼날. 상황 따위 금방 알 수 있었다.
루이스는 부모님에게 처음으로 소리를 질렀다. 화를 내고 증오를 퍼부으며 르네비를 풀어내라 울부짖었다. 부모님은 엘리멘탈에 들어오라 맞받아쳤다. 네 저항이 이리도 일을 키운 것뿐이라며. 부모님이 말이 떨어진 순간, 무기력하게 신도들에게 막힌 루이스의 앞에서 르네비의 오른 팔이 잘려나갔다. 제물을 태우기 위해 폐공장의 한쪽 옆에 쌓여있던 화기로 루이스가 달려 든 것은 그 직후였다.
낡아빠진 폐공장은 활활 타오르기에 적합한 물건들이 많았다. 고무, 나무, 천, 그리고 가스. 바닥에 가스가 조금 남아있던 가스통 몇 개가 터지며 불길은 거세졌다. 신도들 몇이 불길 속에 잡아먹히고, 마침내 붙잡아오는 손길이 사라졌을 때. 기절해있던 르네비를 일으켜 루이스는 공장 밖으로 나가려 했다. 르네비는 그 때에 정신을 차렸다. 고통과 충격에 이성을 잃어버린 르네비는 루이스를 뿌리쳤다. 그리고는 그대로 루이스를 불 속에 밀쳐버렸다. 옷이 타들어가고, 오른쪽 얼굴, 오른쪽 머리카락에 불이 붙었다. 비명을 지르며 불을 손으로 눌러 끄는 바람에 오히려 머리카락이 얼굴에 녹아 붙어 루이스의 화상은 심해졌다. 얼굴 외에도 등과 어깨에 전반적으로 화상을 입었으나, 루이스는 르네비를 데리고 나가야한다는 생각에 그저 정신이 없었다. 르네비를 뒤따라 달려나간 입구 직전, 누군가의 신고로 출동한 911에게 르네비를 구해 달라 소리를 질렀다. 그 직후 르네비와 함께 기절했던 것 같다.
화재의 원인은 낡은 폐공장에서 모였던 사람들이 가스통 옆에서 화기를 사용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워낙에 위험성이 컸던 폐공장이었고 정황상 사고로 결론지어졌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폐공장 안에 있던 사람 중 르네비와 에스를 제외한 생존자는 단 한명이었다. 모르는 사람이었다.
엘리멘탈은 거의 붕괴되었다. 루이스는 그 이후 수많은 사람을 죽여버린 그 사이비 종교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르네비는 기억 상실 판정을 받았다.
루이스는 에스가 되었다.
친구는 단순한 고용자와 고용인이 되었다.
가해자와 피해자.
한달 후, 르네비는 링거 줄로 목을 매 자살 시도를 했다.
논코마측 질문, 어째서 페어의 무의식에 들어가야 합니까?
- 아직 말하지 못했다. 두려움에 거짓말로 둘러댔다. 자신이 가해자라는 것을 르네비는 알아야만 한다. 알고, 자신을 탓하고, 욕하고, 마음껏 침을 뱉은 다음에 용서하지 말아야만 한다. 자신은 르네비에게 어떤 식으로든 상처받아야한다. 그래도 한참 모자랄 것이다. 용기가 없는 겁쟁이인 자신이 대신 죽어도 모자랄 판에 이렇게 혐오와 증오의 대상을 눈앞에 두고 르네비가 한 순간도 울분을 풀어보지 못한 채 가게 내버려 두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자신은 대가를 치러야한다.
비록 두렵지만, 자신을 혐오스럽게 바라보는 르네비도, 어쩌면 정말로 자신을 죽여 버릴지도 모르는 단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적 없었던 사이코패스도, 전부 두렵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무의식에서라도 진실을 안 르네비가 그 입으로 사형선고를 내려주기를, 혹은 르네비의 무의식에서나마 그와 마주친 자신이 피를 토해내듯 고해하여 스스로 자결할 수 있기를. 이렇게 죄책감에 미쳐버리느니, 차라리 사후에서라도 고스란히 경멸받을 수 있도록 함께 죽어버리기를. 죽느니만도 못한 자책감과 일방적으로 쏟아 붓는 애정으로. 사죄라는 이름하에 부정하고픈 자기 만족을 위해.
“나는 르네비의 손에 죽기 위해서 가. 내 스스로 자살하듯 르네비의 무의식 속으로 사라지러 가. 그리고 그 전에, 르네비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진실을 알리고, 르네비가 나에 대해 경멸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나의 친구에게, 나의 희생자에게. 나는 너를 두려워한 만큼 진실로 사랑했노라고, 그리고 그 결과가 이것이라고, 그렇게 고해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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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생년 : 19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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