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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듀아넬] 000. Stalemate.





from. Du-Anell Muiria


To.                              





  당신을 잡을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면, 네. 

    나는 당신을 잡을 수 있습니다.



  어제 처음으로 사람을 잡아먹었을 때 손 안에서 미끈거리던 감각을 기억합니다. 입 안에 쑤셔 넣었던 살점들이 목구멍을 타고 다시 넘어왔을 때의 숨 막히던 그 느낌을, 손 한가득 처음으로 묻혀본 말라붙은 핏자욱들이 바스락거리며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리던 그때 그 기분이 어땠느냐고 묻는다면, 끔찍이도 사랑스러웠다고 답할 수 있어요. 


  이제 내가 당신께 묻습니다. 


    당신은 분명 사람의 익지 않은 고기를 퍼먹지는 않았겠지? 

  당신은 당신만의 기준이 뚜렷한 사람이잖아. 머릿속에 온통 나밖에 없는 고고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잖아. 당신은 무엇으로 요리했지? 프라이팬으로 구웠을까, 전자레인지에 돌렸을까, 기름에 튀겼을까. 당신의 강박관념에 휩쓸려 의무적으로, 기계적으로 삼켰나? 그것도 아니라면 그 유명한 한니발 렉터처럼 우아하게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조리당한 이의 테이블에 앉아 만찬을 즐겼어? 음료수는 무엇으로 했을까. 그들의 피? 평범한 물? 아니면 와인? 뱀파이어처럼 쇠비린내가 나는 사람 피를 삼키면서 무슨 생각으로 내일을 살기를 원했을까. 물을 마시면서 무슨 기분으로 다음 타겟을 생각했을까. 

  와인 잔을 손가락 사이에 끼는 일은 나도 잘해요. 그렇지만 아직 부족한 것 같죠? 


  나는 오늘 사람 모형을 끌어안고 당신이 어느 부위를 가장 좋아할까 하루 종일 고민했어요. 어느 부위가 가장 여린 사람을 노릴까. 당신이 미식가라면 무의식적으로 급을 따지겠지. 

  익힌 고기는 분명 맛있었는데도, 그걸 먹으면서 삼키지 못해 싱크대를 부여잡은 손을 움찔거리는 지금의 나는 당신과 다를 겁니다. 마지막 조각을 먹어치울 때서야 생리적으로 흐르던 눈물은 멎었고, 나는 실패했습니다. 당신이 감이 잡히지 않아요. 무슨 생각일까, 다음은, 어디일까. 그렇지만 언제까지나 계산에 맡겨서는 결국 패배해 버릴 것이 뻔한데, 당연하게도 그럴 수는 없죠.


  완벽하게 당신처럼 생각하고 행동 할 수 있으면, 지루하기 짝이 없는 당신의 기록에 파묻혀 하루 종일 책 페이지 한 장 넘기지 못하진 않을 테니까. 빌어먹을 확률에 의존해 머리 굴리는 일 없이, 당신이 찾아들어간 골목길 그대로 발자욱을 밟아 따라갈 수 있다면 이 모든 것은 쓸모없는 일이 될텐데. 


  마치 그림자 같이, 당신의 등 뒤에 서있는 것은 언제나 내가 될 수 있을 거라고요. 


  당신이 뒤를 돌아봤을 때 내가 웃고 있을거에요. 당신은 내 시야 안에 온전히 들어올 테고, 내 손 안에서 놀아나겠죠. 당신의 뇌가 당신의 것인 한 당신에게는 내가 GPS를 붙여놓은 셈이 될거야. 당신이 엎어버린 증거를 되살리기 위해 면장갑을 낄 필요도 없이, 나는 당신을 잡을 수 있다. 스릴 넘치지 않아요? 

  당신의 걸작품을 부숴버리고, 당신의 손에 수갑을 채우고, 당신을 감옥 안에 처박은 후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상으로 돌아간 나는 무거운 공기에 숨 막혀 죽어버리게 되는 거에요. 내 시체에서는 곰팡이 핀 책 냄새가 날테고, 나는 다시는 이렇게 재미있는 게임은 하지 못하겠죠. 그게 내가 원하는 겁니다. 


   당신과 이 세상을 영영 이별 시키는 것. 


   다시는 없을 이 게임을 나의 승리로 장식하고, 

   이 미쳐버린 스릴을 고스란히 간직하기위해 

   에프터따위 잘라내 버리는 것. 



  물론 그럴 일 없겠지만, 자백할 생각 따위 하지 말아요. 재미없잖아. 그런 시시한 일을 한다면 난 당신보다 먼저 이 재미없는 세상과 작별해버릴텐데 그건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니거든요. 당신도 내가 당신 말고 다른 사람 손에 죽는 건 싫잖아요?


  난 이제 곧 당신이 누군지 알아요. 

  내가 거울을 봤을 때는 당신이 서 있을 겁니다. 내가 양 손을 뻗으면 피투성이로 물든 당신의 손이 보이겠죠. 내가 식사를 할 때마다 포크를 쥐는 것도 당신일테고, 책을 읽는 눈도 당신의 것일거에요. 


  결국, 그래서, 최후에는.

  둘이 따라 들어간 어둠 속에는 나 혼자 서있게 될 겁니다. 세상에 같은 사람이 둘 존재할 수는 없거든요. 도플갱어는 만나면 어느 한쪽이 사라져버린다죠. 


  사라지는 쪽은 당신이지, 내가 아닐 테니까. 

  승리자는 정해져있어. 


  나는 기다릴 수 있어요. 언제까지나 당신의 발자국을 밟아 고스란히 내 뼈 위를 갉아내 새기고, 당신을 완벽히 내 안에 녹여낼때까지. 그렇지만 당신도 기다릴 수 있을까요? 과연 당신은 나와 같을 수 있을까?

 내가 무슨 생각하는 지, 맞출 수 있어? 



  오늘 내 뱃속으로 사라져버릴 여인에게 명복을, 오늘 내 걸작에 뼈를 올릴 그 남편에게 애도를. 

  오늘 당신의 위장 안에서 녹아버릴 이에게 질문을, 오늘 당신의 예술품에 시체를 올릴 이에게 이름을. 


  당신이 죽인 이가 누구인지 아는 순간, 내가 지옥에서 한 번 더 죽여버릴거에요. 

  그래서 당신을 그대로 좇아 다음 계단을 밟을 거고, 당신의 그림자에 숨어서 당신의 얼굴을 볼 때까지 기다릴거거든. 지금은 아니지만, 한번 기다려보던지요. 당신이 잡아 손자국 남은 손잡이위에 내 손자욱이 겹쳐지고, 다음 순간, 나는 당신의 뒷덜미를 물어뜯을 겁니다. 그때가, 내가 처음으로 사람의 익지 않은 고기를 씹어 삼키는 날이 되겠지요. 


  자, 내일 봅시다. 

  행복한 꿈을 꿔둬요. 


  내일에도 당신과 내가 살아 있는 한, 어찌되었던 이 세상은 피비린내 진동하는 체스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 나는 폰, 당신은 킹. 폰이 킹으로 프로모션 하는 최초의 게임이 될 거에요. 무대 위 두 배우처럼 연습한 동작들을 되풀이하는 우리 둘만의 작은 신세계에서, 즐거운 내일 되기를. 


 오늘도 내일 같이, 내일도 오늘 같이.

   반복이 끊기는 순간 떨어진 킹의 목을 밟고 선 이는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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