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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니플헤이머] 005. 질문 (W. 모스)





아무렇지도 않게 툭 말을 내뱉고, 마치 남의 일이라는 양 태연자약하게 한때의 일을 혀 끝에 담았다. 그때는 어땠어? 질문이 들어온다. 엿 같았지. 무덤덤하게 대꾸한다. 그것은 회피 기제요 자기 방어로써 아주 훌륭하게 자신의 일을 소화해내곤 했다. 제 3자의 시선으로 과거의 자신을 내려다보면서, 아하, 한심한 놈. 하고 비웃으면 마치 전부다 부정할 수 있는 것 마냥. 잠시간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고, 고작 그딴 일, 그랬었지, 라며 저 멀리 밀어놓고 곱씹지 않을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그리고 또 누군가에게 언급도 했었다. 나는 그놈의 트라우마들을, 아직도 발바닥을 파고드는 유리조각들을 일일이 질문이 들어올때마다 되새기고 기억하며 괴로워할 만큼의 여유는 없다고. 이미 박힌 잔해들을 무시하고 신발을 신었다 합리화하여 현재와 과거를 멀리멀리 떨어뜨려놓는 일. 일상이 되어버린 비참함에 휘말려 돌아볼 고작 그 몇 초 조차 허락 받지 못했으니 이것이 최선이라 자꾸자꾸 지껄인다. 정말로 무슨 일이 있었던 것 처럼 시선을 돌리고 주제를 비틀어 멀찍이 피해가는 것 보단, 차라리 아무 일도 없었던 것 처럼 태평하게 대답하고 이후로 다시 잊는다.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라고 온 몸으로 비명을 내지르면서 부정하는 짓이었다. 사실 그렇게 아프지 않은 것도 아니었으면서. 
 밑창이 있다고 박박 우겨봤자 또 한걸음 내딛으면 매섭게 파고드는 통증이 있었다. 굳이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바로 밑을 내려다보면 시뻘겋게 번지는 핏자욱이 있었다. 목구멍에서 소리를 만들어 혀 끝으로 내뱉는 일 조차 점점 힘들어지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툭 튀어나오는 것에는 취약하여 저도 모르게 귀를 틀어막을 때, 눈 앞을 내다보면 시꺼멓고 시꺼먼 타들어간 잿가루 같은 세상이 있었다. 고작 그딴 걸로 잊을 수 있을 것 같아?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 맨살 아래 밟히는 잔해들이 걸음마다 빠드득 빠드득 웃었다. 귀에 거슬리고 눈에 거슬려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고 생각했던 그때에, 결국 그대로 걷던 것을 멈추기로 했다.

  12월 29일, 바다.

 바다에서 죽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하필이면 크리스마스 나흘 후에 죽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몰랐다. 그저 그 날, 그 곳. 날짜와 장소만이 머릿속에 남아 빙빙 맴돌고, 빙글빙글 눈 앞을 흐려, 새파란 물과 새하얀 모래사장을 꿈꾸며 하루하루 견뎌나가고는 했다. 바다 끝 절벽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커다란 집을 짓고 살고 싶어요! 작은 어린 아이가 손을 반짝 들고 선생님에게 고했다. 바다 끝 절벽에서 아무도 곁에 두지 않은 채, 그대로 추락해 죽고 싶어요. 작고 낡은 아이가 손을 내린채 허공에 대고 읊조렸다. 뒤이어 아이는 가장 중요한 사항은 '아무도 곁에 두지 않는' 것이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뒤로 물러서고 선을 긋고 그만두라고 소리 지르고 총을 빼들고 위협하고 칼을 휘두르고. 어떻게든 발버둥치며 옭아매는 수많은 실과 끈들 사이에서 아득바득 흙을 긁어, 끝끝내는 풀 한 조각 없는 바다로 뚝 떨어질 절벽을 향해 기어들어가는 일. 언젠가 멈추어설 그때를 위해, 과거를 가장하여 평이한 어조로 툭, 툭, 가슴을 갈랐다. 간신히 꿰매었던 실밥이 투툭 잘려나가면 그 안에서 검음이 한움큼 쏟아지고, 그것은 기는 배 아래서 터져 기어온 길을 길게 남기고 또 남기고. 곧 절벽의 끝입니다, 어머니.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에 자조가 스며들었다. 
 누군가가 이 비참함을 봐줄까. 괜한 자존심에 억지로 걸을 수 있는 척을 했다. 곁에 아무도 남기지 않기 위해 억지로 뛸 수 있는 척을 했다. 아프지 않은 척을 하고, 피 흘리지 않은 척을 하고, 사람인 척을 하고. 얼굴에 철판을 깔고 자신이 아닌 척 억지로 웃거나 눈물 흘리는 일은 자신이 있었지만, 실로 피곤한 일이었다. 체력 소모가 크고 정신적으로 힘드니까 잘 안하는 거지. 뒷말은 혀 끝에서 목구멍 안으로 삼켰다. 왜냐면 평소에도 아프지 않은 척 하니까, 겹치면 괴롭거든. 


  가끔 툭 털어놓듯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가 있었다. 지치고 지쳐서, 어느 순간 지워진 선을 다시 그리기도 지쳐서, 결국 스스로 뚫린 곳에 털썩 주저 앉아 선을 대신 할 적에. 그때 문득 손을 내밀고 말을 건네고, 툭, 조그마한 것을 앞에 떨구곤 제 앞에 쪼그려 물음표를 건네는 사람들에게 질질 끌어온 새까만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가 있었다. 정신없이 우는 것은 오년 전에 그만 두었으니, 그저 조금 씁쓸하게, 많은 후회를 담아서 약간씩 말을 섞어냈었다. 한번도 마셔본 적 없는 칵테일을 삼키듯 뒤섞인 이야기를 띄엄띄엄 한 잔씩 주워섬겼다. 그마저도 하지 않았어야했는데. 
  뒤늦은 후회는, 조금 가벼워진 기분으로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어느새 자신이 상대와 함께 뚫린 선 안쪽에 주저앉아 언듯 웃고 있었음을 깨달았을 때 찾아왔다. 아, 이러면 안되는데. 아아, 이러면, 안되는데. 언제나 머리를 파고드는 날카로운 느낌과 함께 칼에 눈이 후벼파인 마냥 정신을 차렸다. 빠득, 빠드득. 그러나 이미 늦은 것은 한참 늦은 걸. 발 밑 바르작 거리는 조각들이 째진 웃음 소리를 뱉어냈다. 피투성이 발로 간신히 선을 그러모아 막아도, 들어온 사람은 들어온 사람이었다. 결국 선택 할 수 있는 것은 하나 뿐이어서, 다시 안쪽에, 안쪽에 선을 그려 막아도 끊임없이 붉은 선을 발로 밀어지우고 척,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 있었다. 새까만 잿가루를 밀어치우는 짠 바닷물과 같은 사람들이었다.

  나만 믿어.
 그 물길의 가장 앞에 네가 있었다.

  쓸데없는 소리나 잔뜩 하는 재수 없는 놈. 그정도의 첫인상에서, 아무런 거부감 없이 달칵이는 소리와 함께 방독면을 벗어내릴 정도의 이가 된 것은 꽤나 순식간이었다. 줄줄 나열되던 '친구'의 또다른 말에 사레가 들려 미친듯이 기침을 뱉어내던 때에서, 다만 걱정하는 말에 누구 친군데, 라며 픽, 웃음 담긴 문자를 보내는 때가 오기까지도, 꽤나 순식간이었다. 조금 빈틈을 내준 사이 너무 깊숙하게 파고들어온 사람이 하나. 정작 대화를 그렇게 많이 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저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 만으로 기분이 묘해져 문득 뜨인 눈을 내려감고는 했다. 이러면 안되는데. 쓰게 중얼거린 말소리가 닿지도 못하고 흩어졌다. 분명 허공으로 띄워보냈는데, 입김마냥 허옇게 사그라들기만 할 뿐 내려앉을 생각을 않았다. 몇날 며칠을 그렇게 보냈다. 검게 죽은 절벽 끝까지 따라와, 정작 하나도 모르면서 떠나지 않을거라 근거없이 믿게 만드는 사람이, 자꾸 밀려듦에 아파하면서. 욕설을 읊조리고, 떠나라는 말도 해보았다만 무너진 것은 정작 이쪽이었더랬지. 하하. 헛웃음이 샘솟아 제 목을 스스로 쥐어 짜냈을 때마저, 생각 난 것은 네가 죽으면 슬플 것이라며 덤덤하게 이야기하던 목소리였다. 결국은 화를 내며 손에 닿는 것을 집어던지고 충동적으로 조각을 집어들었을 때 마저, 걱정 좀 시키지 말라던 목소리에 결국은 가로막혔다. 네가 그러면. 네가 그러면, 내가. 누군가에게 하는 말도 아닌 말들이 자꾸만 바닥에 처박혔다. 마무리도 되지 않은 단어의 나열들만 주욱 입술 새에서 새었다. 침대보에 머리를 처박고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누군가가 그렇게나 간절했던 순간은 또 그렇게나 오랜만이었다. 정작 옆에는 없는 사람 탓에 이다지도 한계까지 선을 긋다니, 실로 웃기지도 않는 일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소리가 이불에 파묻혔다. 어디갔어. 나 좀 돌아봐줘. 아니라고 말해줘. 가지마.
 띠링. 문자 소리에 핸드폰을 열어보다 가끔 네 이름이 찍혀 있는 것을 보면 짜디짠 바닷물에 입 안이 쓰렸다. 그때도 그랬다. 돌아가지 못하리라 여긴채 받았던 문자 몇 개. 아, 더럽게 짜네. 목구멍이 저리고 머리끝까지 소금기가 배었다. 평소같으면 퉤, 뱉어냈을텐데, 언젠가 양 손으로 손을 끌어다 자신의 가슴께에 가져다댔을 적 뛰었던 심장소리에 칼 끝을 겨눌 수가 없어 그저 톡, 톡. 액정을 두드려 답장을 보냈다. 또다시 답장이 오려나. 서툰 타자로 어떻게든 보내온 문자들을 한번 주욱 올려다보고, 이내 짧은 헛웃음과 함께 화면을 끈다. 바닷물에 푹 잠겨 숨이 막히고 눈이 따갑다. 마치 이미 죽어있는 사람 마냥 호흡하기가 어렵다. 나는 이미 죽었나. 가만 제 손을 제 입에 가져다대었다. 기도를 타고 내뱉어지는 숨은 분명 있는 것 같은데, 그 위로는 느껴지지는 못했다. 문득 내려다본 제 손은 당연하게도 새까만 가죽에 둘러싸여 있었다.

  아직도 내가 죽으면 슬플건가. 내던지듯 툭 내뱉은 말에 돌아온 대답은 반문이었다. 나 지금 화내라고 하는 말? 언젠가 싸워 며칠 제대로 된 대화조차 하지 못하고 지냈을 때가 문득 생각나, 어쩌면 속으로 조금 웃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내뱉는 숨은 희게 언 입김으로 밖에 알아차릴 수가 없다. 죽어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이가 죽는다고 슬퍼할거라 말했었던 네가 새삼스럽게 느껴져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생각들을 정리하는데 한참이 걸렸다. 비집고 튀어나온 가지를 부여잡고, 스스로에게 되새기듯 물었다. ㅡ나는. 한참을 그 단어 하나에서 머물러있었다. 혀 끝이 굳었다. 나는. 그 첫마디에서 떨어지지 않는 입술 탓에 결국 자꾸만 캐묻는 네 앞에서 입을 다물어버렸다.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어. 똑바로 바라보는 시선에 눈을 깜빡였다. 그럼 바보 같은 질문이군. 제대로 묻지 않은 질문에 단호하게 그렇게 대답한 너는 대답, 알잖아? 라며 웃었다. 무슨 질문인지도 모르면서 말은 잘한다며 따져보았지만, 그렇다하여 이미 들은 말을 귀에서 씻어낼 수는 없었다. 한참 입을 열지 못했다. 네가 나에 대해 아는 것이 있던가. 내가 너에 대해 아는 것이 있던가? 어쩌다가 나는 너를 믿고 너는 나를 믿는다 말하게 되었나. 도저히 입 밖으로 떨어지지 않는 질문은 또다른 물음표를 가져왔다. 어쩌다가, 어쩌다가. 대체 어쩌다가, 나는 대답따위 정해져있는 질문 하나 안고 이렇게나 밑으로, 밑으로 떨어졌나. 당연하게도, 말하지 않으면 네가 알 도리는 없었다. 그러니 또다시 당연하게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서있었다. 다음에는 가능할까. 문득 실소를 머금었을 때는, 이미 얼음장처럼 차갑게 굳은 새벽녘이었다.



 후회는 늘, 정신을 차린 직후 뒤늦게 찾아오곤 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도 모를만치 잃어버린 의식 속에서, 나는 어느 순간 너를 붙잡았다. 약의 금단증상이 불러온 환청은 끊임없이 머리를 들쑤셨다. 비명소리와 속삭임이 자꾸만 자꾸만 재촉했다. 아마 그래서 였을테다. 단 한순간도 제대로 닿은 적 없던 가죽 아래 손으로 손목을 붙잡고, 열에 비틀거리며 가눌수가 없는 시선을 어떻게든 네게 맞추었다. 물어봐, 물어봐. 답은 정해져있다며. 망가진 오르골 소리마냥 감기고 감기고 또 돌려 감겨진 누군가의 목소리가 귀를 흐렸다. 네가 무어라고 말을 하는데, 들리지가 않는다. 머리가 난도질 당하듯 아프고 속이 불타오르는 듯 쓰렸다. 잠기고 갈기갈기 찢긴 목소리가 목구멍을 비집고 튀어나왔다. 하나만 묻자. 내 목소리가 맞는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네게 향했다. 웃음 소리가 샜다. 아, 나는 지금 너무나도 아파서 그저 비참하다. 절벽 너머 기다리고 있는 바닷소리가 들리는데, 더이상 기어갈 힘이 없다. 도착하지도 못했는데, 이미 온 몸이 소금물에 푹 잠겨 쓰려서. 그래서 너를 붙잡고 물었다. 가장 그 앞에 선 너를 붙잡고, 웃었다.
 죽어야만 하는데, 살고 싶어졌으면 어떻게 해야하나.

  그 말이 끝이었다.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쪼개진 머리가 아팠다. 떨구어진 손에 아직 네 옷자락이 바르작 잡혔다.
  무너지며 속으로 중얼거려 삼켰다.
  답이 정해져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무서워서 그랬다고.
 
  네가 나를 살고 싶게 만들었어. 대답해줘라.
  나는 어떻게 해야해.
 

찢겨 죽으라는 말일지라도 괜찮으니, 그저 네가 대답해줬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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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 Matryoshka - Sacred Play Secret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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